국내 최초 ‘슬로 아트’ 프로젝트인 리움 ‘다르게 보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관람객들이 스기모토 히로시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리움미술관 제공
국내 최초 ‘슬로 아트’ 프로젝트인 리움 ‘다르게 보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관람객들이 스기모토 히로시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리움미술관 제공
17초.

우리가 미술작품 하나를 관람하는 평균 시간이라고 합니다. 글쎄요. 체감상 더 짧을지도 모르죠. 붐비는 미술관에서 한 작품을 오래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줄 서서 겨우 들어간 전시회라든가, 전시된 작품이 대부분 추상화라면 더 그렇습니다. 침묵해야 하는 공간의 특성상 갤러리에서 그림에 대한 생각을 타인과 나누기도 쉽지 않지요.

한번쯤 미술을 ‘정독’하고 싶은 마니아들의 목마름을 알았는지 리움미술관은 ‘다르게 보기’ 프로그램을 내놨습니다. 미술관이 문 닫는 오후 6시.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서 이색적인 관람 경험을 해봤습니다. 두 작가의 작품 4점을 감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90분. 국내에서 시도되는 최초의 ‘슬로 아트’ 프로젝트입니다.

이색 프로그램 리움 ‘다르게 보기’

5월 10일부터 시작한 리움의 ‘다르게 보기’는 매주 2회 열립니다.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10명 안팎의 소규모 그룹으로 진행되는데, 2~3개 작품을 각자의 방법으로 3분여간 관찰한 후 30분가량 토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지난 19일 네 번째로 열린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장소는 2층 전시관 ‘검은 공백(Black Blank)’ 주제관. 적막한 검은 공간에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8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멤버십에 가입한 30대 직장인부터 리움 전신인 호암미술관 시절부터 찾는다는 n년차 마니아까지. 각각의 사연을 들으며 토론이 시작됐습니다.

이날 주제는 ‘검은색’이었습니다. 그림을 감상하기 전 평소 검은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다양한 대답이 쏟아졌죠. 검은빛은 한자로 현(玄)으로 쓰는데 ‘오묘하다’ ‘우주’를 뜻한다고 합니다. 사형수와 장례식장이 생각나는 죽음의 색이면서 동시에 고급스러운 색깔의 대명사죠. 거장들은 작품 속에서 검은색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당신의 눈엔 어떤 바다가 보이죠?”

그림 4점 보는데 90분…하얀 사막이 바다처럼 출렁였다
첫 번째 감상 작품은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세 작품입니다. 선명한 흑백 바다와 뿌연 회색빛 운무, 하얀 설원처럼 보이는 작품들. ‘감정단어 리스트’를 받은 참가자들은 3분여간 조용히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리스트에는 ‘고맙다’ ‘괴롭다’ ‘허무하다’ 등 다양한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들어 있습니다. 한 참가자는 “딱 한 단어 ‘벅차다’를 골랐다”며 “해가 떨어진 듯한 일몰의 바다가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이에 다른 참가자는 “당장이라도 붉은 해가 떠오를 것 같아서 ‘간절하다’를 골랐다”며 정반대의 생각을 내놓았습니다. 해가 지는 바다 같다는 말을 듣고 일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반대로 들으니 달리 보였죠.

사실 이 세 작품은 모두 다른 장소입니다. ‘슈피리어호, 캐스케이드강’(2003) ‘에게해, 필리온’(1990) ‘황해, 제주’(1992)로 촬영한 연도도 다릅니다. 하지만 한자리에 걸리며 세 작품 각각의 감상이 아닌,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관람객은 그 안에 숨은 스토리를 상상하게 됩니다. 스기모토 히로시는 세계의 여러 바다와 호수 강을 긴 시간 노출한 작품을 만듭니다. 사진 속 바다엔 색채, 사람, 풍경 등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시간성과 장소성이 사라진 채 긴 시간의 호흡으로 담은 바다,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게 뻗은 태곳적부터 존재한 근원적인 존재를 추구했습니다.

진행을 맡은 한주연 리움 디지털마케팅실 수석이 이번엔 바닷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적막한 빈 공간을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채웠습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던 바다에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더군요. 시각과 청각이 함께 있을 때 우리의 감상은 충분히 달라집니다.

“숲인 줄 알았는데, 선생 그 자체였네”

송수남 화백 ‘묵상-나’(1988)
송수남 화백 ‘묵상-나’(1988)
두 번째 감상작은 송수남 선생의 수묵화입니다. 큰 종이에 세로로 쭉 뻗은 먹의 번짐으로 만들어낸 기둥들이 보였습니다.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작품 제목과 설명이 없는 채 다양한 감상평이 쏟아졌습니다. 나무가 높이 자란 숲처럼 보여 마치 정선의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선을 그리고 색을 넣는 서양의 유화와는 달리 수묵은 형태를 머릿속으로 그린 채 한번에 색을 내야 합니다. 덧칠이 불가능한 수묵은 많은 인내가 필요하죠. 게다가 원근을 농도로만 조절해야 하니 굉장히 노련해야 합니다. 점을 찍어 선이 되고 그것이 면이 되는 수묵화.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거장의 깊은 고뇌가 담겨 있죠. 검은색이 이렇게도 다양하고도 화려했는지 함께한 이들 모두 각자의 호흡 안에서 감탄합니다. 그림 밑 여백은 설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투리 없이 색을 칠하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는 생각할 빈자리를 남겨둡니다. 검은 먹선보다 남은 여백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낙관을 먹 부분에 숨겨 찍었습니다. 송수남 선생도 여백이 중요한 공간임을 알려주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작품의 이름은 ‘묵상-나’(1988)입니다. 송수남 선생이 80대 초반에 그린 그림이죠. 묵상(默想)은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함을 뜻합니다. 선생은 작품명에 ‘나’를 넣었습니다. 나무라고 생각한 기둥은 바로 선생 자신이었습니다. 밑동 부분에서 강하게 점을 찍은 채 힘 있고 곧게 뻗어 올라간 7~8개의 기둥. 가장 짙은 부분은 선생의 젊은 날을 그린 것인가. 차디찬 설원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리라, 버텨보리라’ 인생의 굴곡을 박차고 힘차게 뿌리내려 줄기를 뻗어 올린 나무 같아 보입니다. 이 작품은 서서 보는 것보다 앉아서 보는 것이 더 좋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타인과의 농도 짙은 대화 때문이었을까요. 90분이 지난 뒤 다시 본 작품들은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더 크고 깊게 다가왔습니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