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오거스타GC는 왜 명품인가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오히려 한국 명문 골프장이 한 수 위인 것 같던데요.” 한 달 전 세계 최대 골프 축제인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현장 취재한 조희찬 기자에게 “오거스타내셔널GC는 대체 얼마나 좋으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뜻밖이었다. ‘프로 골퍼들이 가장 우승하고 싶어 하는 대회’의 무대이자 전 세계 아마추어들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꿈의 구장’이 한국 골프장만도 못하다니…. 이어지는 조 기자의 설명. “미국 기자들도 그러더군요. 오거스타GC보다 좋은 골프장은 수두룩하다고. 화면이 아니라 두 눈으로 오거스타GC의 민낯을 보니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알겠더라고요.”

분뇨 냄새나는 오거스타

조 기자는 이런 근거를 댔다. 방송 카메라가 없는 홀과 홀 사이는 진흙으로 질척였고, 일부 홀에선 분뇨 냄새가 진동했단다. TV 화면을 초록색으로 채우려고 주변 자갈까지 도색하는가 하면, ‘숲속의 승부’를 연출하기 위해 미리 녹음한 새 소리를 방송에 튼다고 했다. 클럽하우스는 소박하다 못해 옹색했다고. ‘유리판 그린’을 빼면 감탄사가 나올 만한 대목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든 의문. “그럼 대체 어떤 소프트웨어를 썼길래 이 정도 하드웨어를 갖춘 골프장이 세계 최고가 됐을까.” 골프업계 관계자들이 내놓은 답변은 대체로 비슷했다.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 등 역대 최고 골퍼들의 숨결이 깃든 골프장이란 ‘스토리’와 당장의 돈벌이를 위해 골프 팬을 팔지 않는다는 ‘신뢰’가 오거스타GC를 명품 브랜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다. 1934년 제1회 마스터스 대회를 열 때만 해도 오거스타GC는 넉넉하지 않았다. 대공황 탓이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명문이 되려면 얘깃거리가 많아야 한다”며 대회를 밀어붙였다. 그렇게 마스터스는 4대 메이저 중 유일하게 골프협회가 아니라 골프장이 주최하는 대회이자, 여러 골프장을 돌지 않고 딱 한 곳에서만 개최하는 유일한 대회가 됐다. 88년이 흐른 지금, 오거스타GC의 모든 홀은 ‘골프 명인’들의 진기명기로 가득 차게 됐다.

명품 가르는 건 소프트웨어

명품이 되기에 부족했던 2%를 채워준 건 ‘돈 몇 푼에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일은 안 한다’는 경영진의 고집이었다. 오거스타GC는 마스터스 로고가 박힌 기념품을 대회 기간 때 골프장에서만 판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을 제한하니 28달러짜리 모자가 밖에서 150달러에 팔린다. 패션업체에 라이선스를 주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지만, 그냥 ‘공급 부족’ 상태로 내버려둔다. 희소성을 위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골프장 곳곳에 광고판을 내걸면 두둑하게 챙길 수 있지만, TV 화면엔 시퍼런 잔디만 내보낸다. 방송중계권을 입찰에 부치면 매년 1억달러 넘게 벌 수 있는데도 헐값에 CBS에 준다. 단, 두 가지 조건을 내건다. 품격 있게 중계할 것, 그리고 중간광고는 4분 이내로 할 것. 골프 시청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러니 골프 팬은 더 열광한다.

결국 오거스타GC를 명품으로 만든 건 소프트웨어였다는 얘기다. ‘하드웨어 최강국’인 우리나라에 세계가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명품 브랜드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폴린 브라운 전 LVMH 북미 회장은 최근 발간한 저서 《사고싶게 만드는 것들》에서 “고객의 85%는 품질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때문에 상품을 선택한다”고 했다. 오거스타GC가 보여준 ‘소프트파워’에 우리 기업들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