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사는 새 정부 5년의 비전을 집약한 국정운영의 청사진이다.

역대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국정목표와 원칙을 밝히며 구체적 국정과제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사의 화두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회복'으로 정한 것도 이런 상황 인식에 따른 향후 국정운영 철학을 제시한 것이다.

취임사 서두에서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강조한 것도 대북 문제를 포함한 안보이슈와 대내외적 경제환경 등을 핵심 도전과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응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尹정부 출범] 역대 대통령 취임사와 비교해보니
5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당시 최대 현안이 탄핵사태와 그에 따른 국론분열 및 사회적 갈등 극복이어서 '통합' 과제에 방점을 찍었던 것과 비교된다.

이날 취임사에는 '통합'이나 '소통'은 등장하지 않았다.

현 국제정세와 관련해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진단하면서 강력한 북핵 대응 의지를 부각한 것도 전임 정부 출범 때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개발"이라며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특히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대북 기조에 변화를 예고했다.

취임사 중에 '북한 비핵화'(2회), '북한의 핵개발'(2회) 이외에도 '위협', '전쟁' 등의 강경한 표현을 사용한 점도 도드라진다.

반면에 문 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우선 강조하며 동시에 "북핵 문제를 해결할 토대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동북아 평화구조 정착과 한반도 긴장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북핵' 관련 언급은 1회에 그쳤다.

윤 대통령은 또 양극화와 사회갈등을 '빠른 성장'으로 풀어가자며 경제발전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시장경제를 기반의 성장을 강조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전임 보수정권 때와 흡사하지만 방법론에서 차별화를 뒀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이 규제 완화, 감세정책을 통한 기업활동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박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연계한 창조경제 구축에 무게를 뒀었다.

윤 대통령은 여기에 '연대'의 가치를 더했다.

윤 대통령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은 우리나라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며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이뤄낸 많은 나라들과 협력하고 연대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선거 공약과 인수위 국정과제를 통해 경제안보와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강조해온 것과 일맥상통한다.

경제 비전에서도 재벌개혁, 정경유착 해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우선 강조한 문 전 대통령 때와는 확연한 방향성에 차이가 드러난다.

[尹정부 출범] 역대 대통령 취임사와 비교해보니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총 3천440자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상당히 짧은 편이다.

1987년 문민정부 이후 기준으로 보면 취임사 분량은 이명박 전 대통령(8천688자)이 가장 길었고, 문 전 대통령(3천121자)이 가장 짧았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국면에서 약식 취임식을 치른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이 사실상 '최단 취임사' 기록을 썼다.

나머지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 분량은 노태우 전 대통령 6천857자, 김영삼 전 대통령 4천722자, 김대중 전 대통령 7천170자, 노무현 전 대통령 5천103자, 박근혜 전 대통령 5천196자였다.

실제 연설 시간으로 비교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 약 25분, 노무현 전 대통령 약 20분, 이명박 전 대통령 약 27분, 박근혜 전 대통령 20분, 문재인 전 대통령 11분이었고, 이날 윤 대통령의 연설은 16분이었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애초 30분 분량으로 작성된 초안이 수정 과정에서 20분 이내로 단축됐다고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뚜렷하고 간결한 연설을 원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역대 취임사와 다르게 별도의 제목도 달리지 않은 것도 눈에 띈다.

[尹정부 출범] 역대 대통령 취임사와 비교해보니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말했다.

이념과 지역·세대를 초월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을 천명했던 선거 기간 메시지의 연장선이었다.

또 탄핵사태 이후 들어선 새 정부로서, 국민 통합을 향한 염원과 의지를 담아낸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사 제목은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였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북한의 핵무장 위협과 같은 안보 위기를 대한민국의 양대 위기 요인으로 규정하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희망의 새 시대를 실행하기 위해 제시한 키워드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제시했다.

[尹정부 출범] 역대 대통령 취임사와 비교해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사 제목을 '선진화의 길, 다 함께 열어갑시다'로 정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를 지배한 '이념'을 뛰어넘어 '실용'을 선진화의 키워드로 제시했다.

'경제 대통령'을 향한 국민적 염원을 반영해 기업활동 활성화, 일자리 창출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라는 제목의 취임사에서 "개혁은 성장의 동력이고, 통합은 도약의 디딤돌"이라며 개혁과 통합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제왕적 대통령, 정치부패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개혁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난극복과 재도약의 새 시대를 엽시다'라는 제목에서처럼 외환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또 건국 이래 여야 간 첫 민주적 정권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반영해 "어떠한 정치보복도 하지 않겠다"며 국민통합에 역점을 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의 의미를 담아 정부 이름을 '문민정부'로 칭한 데 이어 '신한국사회 건설'을 기치로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주의, 정의로운 사회를 강조했으며, '부패 척결', '한국병 치유' 등 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尹정부 출범] 역대 대통령 취임사와 비교해보니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