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윤동주 시인에게 이런 장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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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봇대 있는 데서
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전봇대를 겨누고
돌 첫 개를 뿌렸습니다.
-딱-
두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세 개째 뿌렸습니다.
-딱-
네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다섯 개째 뿌렸습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맞았을까요.
* 윤동주 : 1917년 북간도 명동 출생.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5년 타계.
--------------------------------------------- 사진 속의 윤동주는 아주 과묵해 보입니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여동생 윤혜원 씨에 따르면 가끔은 장난스럽고 짓궂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우스개는 조금 싱겁긴 해도 어떨 때는 아주 배꼽을 잡게 했다는군요.
“오빠가 할머니와 함께 맷돌로 두부를 만들다가 갑자기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오빠, 누가 왔어?”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천연덕스럽게도 “아니, 그냥 심심해서”라고 하잖아요. 할머니가 “요 녀석이 또 할미를 놀렸구나” 하며 꿀밤 주는 시늉을 하자 우리 모두 배를 잡고 넘어갔죠.”
장난기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줌싸개 지도’라는 동시를 볼까요.
‘빨랫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 본 어머님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버지 계신/ 만주 땅 지돈가.’
얼핏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숙연해지는 시입니다. 동생이 오줌 싼 이불을 내다 말리면서 ‘별나라’ 간 어머니와 ‘돈 벌러’ 간 만주 땅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대목이 그렇지요. 이 그림 속엔 아이들만 있고 부모는 없습니다. 동심의 거울에 비친 현실의 아픔이 그래서 더 절절하지요.
‘창구멍’이란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웁니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그러나 연희전문 1학년 때 ‘산울림’ 등 다섯 편을 발표한 뒤로 그는 동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습니다. 맑고 아름다운 동심을 잃어버렸던 것일까요. 광폭한 시대의 그늘에 할 말을 잃었던 것일까요.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해맑은 ‘만돌이’를 닮은 윤동주 얼굴을 새삼 떠올려 봅니다.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라며 눈썹을 휘날리며 축구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봇대 있는 데서
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전봇대를 겨누고
돌 첫 개를 뿌렸습니다.
-딱-
두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세 개째 뿌렸습니다.
-딱-
네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다섯 개째 뿌렸습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맞았을까요.
* 윤동주 : 1917년 북간도 명동 출생.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5년 타계.
--------------------------------------------- 사진 속의 윤동주는 아주 과묵해 보입니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여동생 윤혜원 씨에 따르면 가끔은 장난스럽고 짓궂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우스개는 조금 싱겁긴 해도 어떨 때는 아주 배꼽을 잡게 했다는군요.
“오빠가 할머니와 함께 맷돌로 두부를 만들다가 갑자기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오빠, 누가 왔어?”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천연덕스럽게도 “아니, 그냥 심심해서”라고 하잖아요. 할머니가 “요 녀석이 또 할미를 놀렸구나” 하며 꿀밤 주는 시늉을 하자 우리 모두 배를 잡고 넘어갔죠.”
중1 때부터 축구선수로 뛰었던 동주
이런 동주의 모습은 작품에도 그대로 배어납니다. 그가 쓴 동시가 30편이 넘는데, 그중 ‘만돌이’에는 공부하기 싫은 소년의 심리가 능청맞게 그려져 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뛴 동주의 모습이 ‘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는 대목에 겹쳐지지요? ‘허양’은 ‘거뜬히’라는 뜻의 북간도 사투리입니다.장난기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줌싸개 지도’라는 동시를 볼까요.
‘빨랫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 본 어머님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버지 계신/ 만주 땅 지돈가.’
얼핏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숙연해지는 시입니다. 동생이 오줌 싼 이불을 내다 말리면서 ‘별나라’ 간 어머니와 ‘돈 벌러’ 간 만주 땅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대목이 그렇지요. 이 그림 속엔 아이들만 있고 부모는 없습니다. 동심의 거울에 비친 현실의 아픔이 그래서 더 절절하지요.
‘창구멍’이란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웁니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대학 1학년 이후로는 동시 안 써
추운 새벽 장에 가는 아버지 뒷모습이 보고 싶어 문종이에 침을 발라 뚫은 구멍 속으로 아침 해가 비치고, 겨울 저녁 나무 팔러 간 아버지를 기다릴 땐 마음이 더 급해져 혀로 구멍을 넓혔는데 그 사이로 북방 찬바람이 날아드는 풍경. 아이의 눈에 비친 삶의 현장과 아롱거리는 가족애가 따사롭고도 애잔하게 그려져 있지요.그러나 연희전문 1학년 때 ‘산울림’ 등 다섯 편을 발표한 뒤로 그는 동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습니다. 맑고 아름다운 동심을 잃어버렸던 것일까요. 광폭한 시대의 그늘에 할 말을 잃었던 것일까요.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해맑은 ‘만돌이’를 닮은 윤동주 얼굴을 새삼 떠올려 봅니다.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라며 눈썹을 휘날리며 축구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