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의 광채, 쇳밥이 묻어나는 타건…폴리니가 연주한 '쇼팽'
그의 연주를 상상하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광채가 떠오른다.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그의 이름은 전설이다. 1960년 쇼팽콩쿠르 심사위원 만장일치 우승이라는 경력이 먼저 떠오른다. 당시 심사위원장이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말했다. “심사위원들 가운데 누가 폴리니만큼 연주할 수 있겠는가?”

폴리니는 가장 화려할 때 숨어버린 은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곧바로 잠적했다가 10년이 지나서 무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사이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폴리니는 쇼팽콩쿠르 우승 뒤에 약 1년 동안 꽉 찬 일정으로 순회 연주회를 한 뒤 1년간은 휴식을 취했다. 이후 5년 동안 많지는 않지만 규칙적으로 연주회를 열었다고 한다. 1968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 연주 횟수를 늘려가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와전된 이야기 같다.

폴리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 살 연상의 거장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콩쿠르에서 인연이 있다. 아르헤리치가 1957년 제네바콩쿠르에서 우승할 때 폴리니는 2위였다. 쇼팽콩쿠르 우승은 폴리니가 먼저 따냈다. 그다음 회차인 1965년 쇼팽콩쿠르에서 아르헤리치가 우승했다. 두 사람은 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연주가로 성장했다.

폴리니의 연주 스타일은 한마디로 잘 깎인 다이아몬드에 비유된다. 그만큼 완벽하게 다듬어진 치밀함과 빈틈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기교가 기교로 느껴지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처럼 다가온다. 그 정도로 기교가 몸에 녹아 있다. 폴리니의 명반은 수없이 많다. 독주곡에서는 역시 쇼팽을 꼽고 싶다. 이 중 1972년 뮌헨 헤르큘레스잘에서 녹음한 연습곡, 같은 곳에서 1974년 녹음한 전주곡, 1975년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 녹음한 폴로네즈 등 석 장의 음반이 묶여서 발매된 음반을 추천한다.

폴리니의 에튀드는 쇼핑의 연습곡에 예술성을 구현한 시금석이자 금자탑이다. 전설의 명연으로 오랫동안 일컬어져 왔다. 아르헤리치가 뜨겁고 붉은 열정의 화신이라면 폴리니는 그 대척점에 있다. 파랗게 타오르는 얼음 불꽃 같은 냉철함을 상징한다. 각 곡은 한 치의 오차 없이 흘러간다. 기계 같은 손에서는 쇳밥이 묻어날 것 같다.

프렐류드(전주곡)에서도 분석적인 폴리니의 성향은 여전하다.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고 분석하며 재구성한다. 이 때문에 듣는 이들은 쇼팽 곡들을 감상하며 아름다운 세부와 더불어 균형 잡힌 전체를 통일감 있게 음미할 수 있다. 폴로네즈에서도 기교와 음악성 양면에서 빼어난 연주를 펼친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