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형식 제한 없는 콘텐츠 수요 증가…"IP 확보·글로벌 진출 꿈꿔"

26일 방송가에 따르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놀라운 토요일', '여고추리반' 등 CJ ENM의 간판 예능을 만들어온 PD들이 줄줄이 퇴사 의사를 밝혔거나 이미 퇴사했다.
반면 JTBC는 CJ ENM 출신 PD들을 포함해 다른 방송국 PD들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방송사를 떠난 PD들 가운데는 김태호 PD처럼 직접 소규모 제작사인 레이블을 차리거나, 독립된 제작사,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로 옮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 CJ ENM 인력이탈…대표 예능 '유퀴즈' 연출진도 이적 논의
콘텐츠 '공룡 기업'으로 불리며 수년간 잘 나가는 스타 PD들을 영입하며 신선한 예능 프로그램을 내놨던 CJ ENM이 최근 잇단 인력 유출을 겪고 있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출연으로 논란을 빚었던 tvN '유퀴즈'의 김민석 PD와 박근형 PD의 JTBC 이적 논의가 대표적 사례다.
2018년 8월 첫 방송을 시작한 '유퀴즈'는 시즌제 예능이 많은 tvN에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간판 프로그램이다.
특히 김 PD는 tvN이 나영석 PD의 연출작 외에 다양한 예능을 내놓기 시작하던 시기에 '유퀴즈'를 성공적으로 론칭시킨 인물이다.
올해 초 가희, 선예 등 왕년 아이돌의 복귀 무대로 화제를 모았던 tvN 음악 예능 '엄마는 아이돌'을 선보인 민철기 PD는 이미 JTBC로 이적 절차를 마무리하고, 이달 중 출근할 예정이다.
MBC에서 음악 예능 '복면가왕'을 성공시킨 뒤 2017년 tvN으로 이직한 지 5년 만이다.
여기에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을 연출한 이태경 PD, '더 지니어스', '대탈출', '여고추리반' 등 추리 예능 시리즈를 연출한 정종연 PD도 CJ ENM을 떠나 김태호 PD의 제작사 합류를 검토하고 있다.
사실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론칭한 예능 PD들의 이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쟁이 치열한 콘텐츠 업계에서 기획·연출 역량을 입증한 PD들은 몸값을 높이며 자리를 옮기곤 했다.
두세 번씩 이적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다만 CJ ENM에서 비슷한 시기에 퇴사자가 잇따르면서 경쟁력 있는 PD들을 붙잡아 두지 못하는 데는 내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CJ ENM이 직면한 인력 유출은 수년 전부터 방송사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 CJ ENM이 지상파 PD들을 흡수했다면, 이제는 OTT, 제작사들이 '스타 PD' 모시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KBS에서 '불후의 명곡'을 연출하던 권재영 PD는 지난 2월 제작사 A9미디어로 이적했고, 지난해 SBS에서 퇴사한 '정글의 법칙'의 민선홍 PD는 디즈니+로 이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tvN에서 정치 풍자로 주목받은 'SNL 코리아'를 만든 안상휘 CP는 제작사 에이스토리로 자리를 옮겨, 새로워진 'SNL 코리아'를 쿠팡플레이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들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PD들 사이에서는 TV 예능의 경우 제작비도 OTT 등과 비교해 여유롭지 않은 편이고, 편성된 일정에 맞춰 방송분을 완성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등에 대한 불만이 쌓인 상태다.
방송사 관계자는 "시대가 변하면서 예능 PD들의 몸값이 올라갔고, PD 자체가 브랜드가 됐다"며 "콘텐츠를 성공시킨 PD들과 계속 일하려면 베네핏(혜택)을 주고 붙잡아둬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방송사 가운데서 JTBC가 최근 예능 PD들을 속속 영입하는 점이 눈에 띈다.
JTBC는 김민철, 김민석, 박근형 PD 영입에 앞서 그전부터 예능 PD들을 꾸준히 데려왔다.
채널A에서 '강철부대', '도시어부'를 연출한 장시원 PD는 이승엽을 비롯한 레전드 야구선수들의 그라운드 복귀 예능인 '최강야구'를 올해 상반기 선보이고, MBC에서 이적한 성치경 PD는 '뭉쳐야 찬다', '언니들이 뛴다- 마녀체력 농구부' 등을 내놨다.

최근 PD들은 콘텐츠 제작에 어느 정도 독립성을 보장받는 곳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대표적 사례가 올해 MBC를 퇴사한 김태호 PD다.
김 PD는 새로 제작사를 설립하고, 첫 연출작으로 이효리의 서울 나들이를 담은 '서울체크인'을 티빙에 선보였다.
김 PD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적 소감을 묻자 방송 다음 날 아침 시청률 통보를 받지 않아 후련하다는 소감과 함께 콘텐츠 제작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넉넉하고, 장르에 대한 자율성이 높아져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실제 PD들은 방송사에 소속된 '월급쟁이'보다 창작자로서 콘텐츠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고, OTT나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상파에서 뉴미디어 플랫폼으로 이적한 한 PD는 "최근에는 방송사를 퇴사하고 다른 방송국이나 스튜디오에 가기보다 독립된 제작사를 차리거나 PD들끼리 만든 제작 스튜디오로 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방송사에 소속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프로그램이 잘 되더라도 월급만 받기 때문에 지적재산(IP)을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콘텐츠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언급하면서 "레거시 미디어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국내 시장에 머물지만, OTT 플랫폼으로 나가면 훨씬 더 많은 시청자를 만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또 TV 예능보다는 소재나 형식에 제약이 없는 유튜브 콘텐츠 등이 인기를 끌면서, 변화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제작 환경을 선호한다.
방송사에서 퇴사한 또 다른 예능 PD는 "기존 방송 채널에서는 콘텐츠를 기획할 때 60분, 120분 등 정해진 편성 시간을 고려해야 하고, 그에 따른 소재나 아이템, 구성 등에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다"며 "뉴미디어 플랫폼을 비롯한 새로운 미디어는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