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봉쇄가 진행 중인 지난 18일 상하이의 한 임시병원.  /사진=EPA
도시 봉쇄가 진행 중인 지난 18일 상하이의 한 임시병원. /사진=EPA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의 방향을 사실상 결정해 오던 감염병 권위자가 쓴 "장기적 관점에서 '제로 코로나'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논문을 소개하는 기사들이 중국 매체에서 사라졌다.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는 지난 6일 영문 학술지 내셔널 사이언스 리뷰에 '다가오는 코로나19 시대에 중국의 재개방 전략'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내셔널사이언스리뷰는 중국과학원의 후원을 받는 과학 저널이다.

중국공정원은 한국의 공학한림원 같은 학술 연구기관이며 원사는 정회원에 해당한다. 중 원사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퇴치에 기여한 호흡기질환 전문가이며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19년 말 우한 화난수산시장에서 시작된 폐렴이 빠르게 확산할 때 중국 보건당국은 '사람 간 전염 증거가 없다'며 사태를 축소하려 했으나 중 원사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염될 수 있다고 밝혔고, 이후 중국은 전면적인 방역체계 구축에 나섰다. 이후에도 그는 봉쇄식 관리, 집단면역을 위한 백신 접종 확대 등을 건의했다.

중 원사는 코로나19의 기원이 중국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공식 통계보다 실제 감염자가 훨씬 많을 수 있다고 지적하는 등 중국 내에서 비교적 과학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유지해 온 인사로 꼽힌다.

중 원사는 이번 글에서 "중국은 사회·경제적 발전을 정상화하고 글로벌 재개방에 맞추기 위해 다시 문을 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이내믹 제로 코로나(動態淸零·동태청령)'가 그동안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해 왔지만 장기적으로는 추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 원사는 백신 접종률을 높여 집단면역을 달성하는 게 당면 과제라고 제시했다. 중국의 백신 접종률은 지난 2월말 기준 2차까지가 87%, 3차 이상이 40%다. 다만 70세 이상 노년층의 접종은 아직 더디다. 중 원사는 중국에서 현재 접종 중인 불활성 백신을 2차까지 맞도록 한 후 중국 기업들이 아직 개발을 마치지 못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부스터샷으로 접종하면 예방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 결과가 빠르게 나오는 항체검사 확대, 감염 경로 추적, 방역 완화 시범구역 지정 등을 '제로 코로나' 정책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글은 중국어로 번역돼 지난 18일 중국의 뉴스 사이트들에 발표됐지만 이후 삭제됐다고 SCMP는 전했다. 상하이 등 주요 경제권 봉쇄로 중국 경제 피해가 커지면서 방역 완화 여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중 원사의 발언은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글을 소개하는 기사들이 삭제된 것은 정부의 방침에 대한 '다른 목소리'로 인식될 수 있다는 당국의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