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 칼럼] '경쟁력 47위' 한국 대학의 자화상
한국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다. 청년층 대학 진학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다. 그런데 대학교육의 경쟁력은 그리 높지 않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경쟁력 평가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64개국 중 23위, 대학교육 경쟁력은 47위에 머물렀다. 얼마 전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인 QS가 발표한 ‘전공별 세계 대학 순위’에서도 ‘톱 10’에 드는 국내 대학 학과는 한 개도 없었다. 51개 전공별 1위의 절반 이상이 미국 대학이었고, 아시아에선 싱가포르가 23개, 중국이 4개, 일본이 3개 전공에서 10위 안에 들었다.

대학교육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 찾을 수 있겠지만 결국 재원 문제다. 좋은 교수를 모셔 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좋은 시설에서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한다. 특히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엄청난 속도의 기술 변화를 좇아가는 데만도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대학, 특히 지방 사립대는 투자는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전등을 끄면서 학교 지출을 아낀다는 ‘웃픈’ 얘기들이 나온다. 근본적인 이유는 학령인구 감소다. 게다가 주요 수입원인 등록금이 2009년 이후 동결돼 대학 재정은 더 크게 악화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정부 예산은 국공립대에 집중되고, 사립대는 재정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등록금 책정이든 학생 선발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전체 대학의 85%가 사립이다. 학생 수로 보면 78%가 사립대에서 교육받고 있다. 대학교육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전제하면 정부가 국공립대만 챙길 수 없는 구조다.

또 많은 대학이 생존 위기에 처한 이유 중 하나가 대학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정부의 ‘원죄’도 있다. 대졸자 수요가 늘자 정부는 1996년 교지(학교 땅), 교사,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 4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대학 설립을 인가해주는 ‘대학 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2013년 폐지됐지만, 그사이 사립 대학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우리나라 사립대 재정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은 등록금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대학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55%(2020년 기준)에 달한다. 반면 학교법인이 수익용 자산을 굴려 대학을 위해 쓰는 전입금은 4~5%에 불과하다. 사립인데도 정부 지원금(15~30%) 비중이 훨씬 높다.

경쟁력이 높은 미국 주요 사립대는 학교 수입 가운데 학자금 비중이 32%(2018~2019년 기준) 정도다. 이 밖에 대학 기금 투자에서 나오는 수입이 12%,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각종 지원금이 12%, 대학 내 수익사업이 8%, 기부금과 병원사업, 교육사업 등 기타 수입이 36%다. 학교의 재원이 훨씬 다변화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학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초는 재정 건전성과 자율성이다. 14년째 동결된 등록금 책정은 이제 대학 자율에 맡길 때가 됐다. 대신 학교가 등록금을 올린다면 학생들을 위한 투자에 쓰도록 해야 한다. 학교법인도 하나의 ‘기업’인데 법인이 부담해야 할 법정 전입금, 예를 들어 교직원연금 부담금까지 학생 등록금으로 메우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교육에 의지가 있고, 활로를 찾기 위해 자구노력을 하는 대학은 사립이라도 정부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자생력이 없는 대학은 인수합병(M&A)이나, 다른 방식으로 퇴로를 찾게 해야 한다. 대학 기부금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대학법인이 보유재산 투자수익률을 높여 학교에 더 기여하도록 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새 정부의 교육부가 할 일은 대학 운영에 대한 시시콜콜한 간섭이 아니라 이런 큰 틀의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