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가치없는 옷 입어도 된다고 해"…법원 "질문·추궁 이해 못 했을 듯"
경찰 "조사 당시엔 통역 원치 않아"…검찰, 판결 불복해 항소

중앙아시아 국적 외국인 근로자 A(27·여)씨와 B(23·여)씨는 2020년 3월 입국 후 강원 원주의 한 중고 의류 공장에서 일했다.

1년 가까이 일하던 A씨 등은 지난해 1월 특수절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서 재판까지 받게 됐다.

'통역 없는 수사 탓'에 절도범 몰린 외국인 근로자들 1심 무죄(종합)
이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특수절도. 2020년 11월 자신들이 일하는 의류 작업실에서 2차례에 걸쳐 합동으로 회사 소유의 옷을 가지고 나와 이를 훔쳤다는 것이다.

A씨는 혼자서 2차례 더 회사의 옷을 훔쳤다는 절도 혐의가 추가됐다.

법정에 선 이들은 "업체 사장이 일하는 동안 비교적 상품 가치가 없는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사전에 양해가 있었을 뿐 절도의 고의가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훔친 옷이라고 특정된 의류 중 일부는 자신들 소유의 것이어서 피해품도 제대로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하는 공장에서 일부 옷을 입고 가거나 가지고 간 것에 대한 사실은 다툼의 여지가 없었지만, 의류 절도의 고의 여부를 놓고 1년 3개월간 법정 공방을 벌였다.

재판부는 회사에서 상품성이 낮은 옷을 입도록 허락한 사실이 있고, A씨 등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도 작업 중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골라서 입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옷을 골라 입을 때마다 미리 허락을 받았는지와 입고 싶은 옷이 있다면 직접 와서 말을 해야 한다는 취지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또 A씨 등이 공장에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았고 회사 내 기숙사에서 생활한 점, 공장에서 가져간 옷을 출퇴근할 때 입고 다닌 점, 일부는 옷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도 재판을 통해 파악했다.

'통역 없는 수사 탓'에 절도범 몰린 외국인 근로자들 1심 무죄(종합)
하지만 A씨 등이 공장에서 가져간 옷을 다른 곳에 판매하거나 현금화했다는 것을 인정할 자료는 없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피해품 사진에 나온 옷과 CCTV 캡처 사진에서 확인되는 옷과 일치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등 피해품이 제대로 특정된 것인지도 의문이 있었다.

1심 재판부인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 2단독 이지수 판사는 이 같은 판단을 토대로 A씨와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이 판사는 "회사에서 허락한 옷이라고 주장하나 가져갈 때마다 허락을 받지는 않았다"며 "이 때문에 '회사의 허락 없이 옷을 가져간 행위는 절도'라는 수사관의 추궁에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어 구사 능력을 고려할 때 통역 없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피고인들의 주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거나 수사관 질문이나 추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은 증명이 부족하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또 "피해품을 특정하는 과정에서 통역이 없었기 때문에 피고인들과 경찰관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통역 없는 수사 탓'에 절도범 몰린 외국인 근로자들 1심 무죄(종합)
이에 경찰은 "당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당시 A씨 등이 한국말을 어느 정도 사용했고, '통역이 필요하냐'는 조사관의 제안에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해 그대로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A씨 등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복해 이날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