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웨덴 협력 연구 성과…'셀 리포트' 게재
서울대 연구진 "신경세포 정체성·기능 형성 과정 최초 규명"
국내 연구진이 예쁜꼬마선충 연구를 통해 신경세포에 정체성과 기능이 부여되는 체계적인 과정을 최초로 규명했다.

이 과정에서 생명체가 신경세포에 새로운 기능을 주기 위해 별도 유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유전자를 일부 변형해 활용한다는 진화적 속성도 확인됐다.

13일 서울대에 따르면 이준호 자연대 교수 연구팀과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의 '닉테이션' 행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IL2 신경세포의 특성을 결정하는 조절 인자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닉테이션은 생존에 열악한 환경에 놓인 예쁜꼬마선충이 휴면 유충 단계인 다우어 상태로 변해 몸을 흔드는 방식으로 다른 동물에 올라타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일종의 히치하이크 행동이다.

그간 예쁜꼬마선충의 섬모성 신경세포인 'IL2'가 닉테이션 행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IL2의 어떤 특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닉테이션을 일으키는 IL2의 원인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예쁜꼬마선충의 모든 섬모성 신경세포 발생에 관여하는 조절 유전자인 daf-19의 새로운 유전자 동형인 daf-19m을 발견했다.

섬모는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운동성 세포기관으로, 예쁜꼬마선충의 경우 외부 자극을 수용하는 섬모성 신경세포가 있다.

유전자 동형은 유전체에서 같은 위치에 있는 유전자지만, 내부 구조 등이 달라 기능 차이가 예상되는 유전자를 의미한다.

daf-19m은 당초 수컷 특이적인 예쁜꼬마선충의 신경세포 내에 있는 유전자 조절 인자로 알려졌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IL2 신경세포에도 기능을 부여하고 하위 조절 유전자를 통해 닉테이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연구진은 밝혀냈다.

연구진은 "개별 신경 세포의 발생 체계를 연구해 개체의 단일 신경세포가 어떻게 정체성을 획득하고, 또 그것이 어떻게 개체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규명했다"며 "특히 인체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섬모성 신경세포가 고유한 정체성과 기능을 가지는 과정을 밝히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생명체가 특정 세포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기존 유전자의 일부만 수정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을 제시했다"며 "이는 진화적 관점에서 새 유전자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유전자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이른바 '진화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뒷받침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는 섬모성 신경세포가 어떤 방식으로 정체성을 얻는지 등 조절 기전을 규명하는 단초"라며 "나아가 섬모성 뉴런 이상 때문에 생기는 여러 질병에 대한 이해 수준을 더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2012년 공동교신저자인 이준호 교수가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에 1년간 체류하면서 시작된 연구로, 10년간의 공동 협력 연구 끝에 올해 결실을 봤다.

이준호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한-스웨덴 국제협력 연구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며 "한-스웨덴 국제협력의 성공적 사례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전날 국제 학술지인 '셀 리포트'(Cell Reports)에 게재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