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제야 명문화되는 인격권
법무부가 지난 5일 인격권과 인격권 침해 배제·예방 청구권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민법 제정 64년 만에 일부 판례로만 인정돼온 인격권의 명문화로 주목된다.

그동안은 민사법상 재산적 손해가 있을 때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다. 인격권이 도입되면 재산상 피해가 없더라도 인격권을 침해당한 데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물을 수 있다. 개인 인격을 사유 재산처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인격권이란 사람이 자신의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개인정보 등과 같은 인격적 이익에 대해 가지는 권리를 말한다. 명예권, 성명권, 초상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 다양한 권리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용어지만 독일, 스위스 등 대륙법계 국가에선 이미 일반화돼 있다. 미국에서는 인격권이라는 표현 대신 프라이버시나 명예훼손으로 접근하고 있다.

최근 불법 녹음·촬영, 직장 내 갑질, 학교 폭력, 가짜뉴스 유포, 디지털 성범죄, 개인정보 유출 등 여러 종류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가 속출하고, 이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증가하면서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처럼 새롭게 떠오른 인격 침해 문제에서 국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와 기준을 분명히 한다는 게 이번 입법 취지다. 인격권은 자연인은 물론 법인에도 똑같이 부여된다.

인격권의 명문화는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딥 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음란 영상물을 제작하는 행위, SNS를 통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례, 온라인으로 접근하거나 개인의 신상정보를 알아내 손해를 끼치는 행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송이 급증하고, 배상 규모도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의미가 포괄적이고 경계가 불분명한 권리인 데다, 인격권에 속하는 명예나 프라이버시 개념도 모호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해석과 적용에 적지않은 혼란을 불러올 게 불보듯 뻔하다. 인격권 보호에 무게를 두다 보면 거꾸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할 여지도 있는 만큼 두 권리 사이에 균형도 찾아야 한다. 입법과 동시에 인격권 침해 인정 여부와 손해배상 적용 범위 등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