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사냥 뒤 먹이 쟁탈 때 치명적 부상 줄이려는 것… 미 학자 새 가설 제시
티라노사우루스 짧은 앞다리는 물리지 않기위한 진화?
백악기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 rex)는 강력한 턱과 원뿔형 이빨로 '폭군 도마뱀'이라는 이름처럼 공포의 포식자였지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앞다리(팔)가 짧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길이가 평균 13.5m에 달하고, 두개골도 1.5m를 넘지만, 앞다리는 90㎝밖에 안 된다.

인간으로 따지면 180㎝ 키에 팔 길이가 13㎝가 안 되는 셈이다.

T.렉스 화석이 1900년에 처음 발견된 이래 기형적일 만큼 짧은 앞다리를 놓고 짝짓기 때 상대방을 붙잡는 용도부터 먹잇감을 잡거나 찌르는 손 역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설이 제기돼 왔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할만한 설명이 되지는 못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의 저명한 통합생물학 교수인 케빈 파디안 박사는 짧은 앞다리의 용도보다는 동물 세계에서 짧은 앞다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수립한 새로운 가설을 계간 고생물학 국제학술지인 '폴란드 고생물학 회보'(Acta Palaeontologia Polonica)에 발표했다.

집단 사냥을 하는 T. 렉스가 먹잇감에 한꺼번에 달려들어 머리를 들이밀고 경쟁적으로 살점과 뼈를 뜯어 먹다가 지나치게 접근한 옆의 T. 렉스 다리를 경고의 의미로 물어뜯을 수도 있는데, 출혈이나 감염 등으로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이런 부상을 피하려고 사냥할 때 사용하지 않는 앞다리가 짧아지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골자다.

파디아 교수는 티라노사우루스과 공룡들이 단독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집단 사냥을 했다는 증거를 제시한 다른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티라노사우루스 짧은 앞다리는 물리지 않기위한 진화?
특히 인도네시아 코모도섬에 서식하는 코모도왕도마뱀이 집단사냥을 하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먹이를 물어뜯는 과정에서 다른 개체에 대한 공격적 행위가 발생하는 것에서 T. 렉스의 집단 먹이활동 상황을 유추해 냈다.

파디아 교수는 T. 렉스 조상은 더 긴 다리를 가졌지만 크기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면서, 이는 백악기 말기 북미에 서식했던 T. 렉스뿐만 아니라 백악기 중기 아프리카와 남미의 아벨리사우루스 과(科)와 유럽과 아시아에 서식한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 과 공룡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캘리포니아대학 박물관 고생물학 큐레이터이기도 한 그는 T. 렉스의 짧은 앞다리와 관련해 제기된 모든 가설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거나 짧을 때보다 긴 다리일 때 더 유리해지는 등 이치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예컨대 T. 렉스 화석이 처음 발견됐을 때 짧은 앞다리가 가오리나 상어가 교미할 때 암컷을 붙잡아두는 데 사용하는 '골반 걸쇠'와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데다 상대방을 제어하기에는 다리가 너무 짧고, 약한 것으로 지적됐다.

파디아 교수는 "앞다리는 너무 짧아 서로 맞닿지도 않고 입에 도달하지 않으며 기동성도 약해 앞이나 위로 완전히 펼칠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설을 포함해 모든 가설이 6천600만년 전에 멸종한 공룡의 상황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T. 렉스 화석에 남아있는 물린 흔적을 모두 조사해 짧아진 다리에서 그런 자국이 덜 발견된다면 이 가설이 옳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