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에도 '촉각'
금통위 14일 총재 없이 기준금리 결정…사상 처음

약 10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넘어서면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다음 주 14일 기준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진화에 나설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은 총재의 공석과 우크라이나사태 등에 따른 성장 둔화를 근거로 금통위가 이달이 아닌 5월에야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도 여전히 있지만, 당장 물가가 성장보다 '더 급한 불'이 되는 분위기다.

'4%대 물가'에 한은 다음 주 기준금리 올리나
◇ 한은 "당분간 4%대"…물가 방치 어려울 듯
통계청이 5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4.1% 뛰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만에 4%대에 올라섰다.

더구나 이런 물가 급등세가 단기간에 진정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은은 이날 오전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유, 곡물 등 원자재가격 상승 영향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4%대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연간 상승률도 한은의 기존 전망치(3.1%)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심각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물가안정을 제1 목표로 삼는 한은으로서는 방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미 지난 2월 24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도 대다수 금통위원은 물가 급등 등을 근거로 향후 기준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위원은 "국내경제의 성장, 물가, 금융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더욱 축소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특히 물가 경로의 상방 위험이 인플레이션 기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과 정책 시차를 고려할 때 선제 대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도 "국내경제는 회복 흐름을 기조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갭률(실제 GDP와 잠재 GDP의 격차)이 상반기 중 플러스(+) 전환될 것으로 기대되고, 목표치를 상회하는 물가 오름세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기대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며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에서 안정되도록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지속적으로 축소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도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 관련 질문에 "상반기의 경우 부득이하게 한은의 예상(3.1%)보다 높아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4%대 물가'에 한은 다음 주 기준금리 올리나
◇ 미 연준 '빅 스텝' 나서면 수개월내 한미 금리 역전될 수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씩 올리는 이른바 '빅 스텝'에 나설 가능성도 다음 주 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연준이 5월 이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잇따라 두 차례만 0.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높여도 두 나라 사이 기준금리 격차는 현재 0.75∼1.00%포인트 한국이 높은 상태에서 미국이 우위인 상태로 수개월 사이 역전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은 금통위도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5월로 미루지 않고 서두를 가능성이 있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만약 기준금리 등 정책금리 수준이 미국과 같거나 높더라도 차이가 크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 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기조적 달러가치 상승과 원화가치 하락이 예상된다는 점에서도 적정 수준의 기준금리 격차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 후보자도 최근 한미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속도가 빠를 것이기 때문에 격차가 줄어들거나 역전될 가능성은 당연히 있다"며 "반드시 자본이 금방 유출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금리가 커지면 원화 가치가 절하될 텐데, 그것이 물가에 주는 영향을 조금 더 우려하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사상 초유의 총재 없는 금통위…비둘기파 주상영 위원이 주재
이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 일정조차 아직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상 초유의 한은 총재 공석 상태는 오는 14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 시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의장을 겸하는데, 총재가 자리를 비우면 금통위원 중 한 명이 직무대행으로서 금통위 의장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오는 14일 금통위 회의는 미리 정해놓은 순서에 따라 주상영 위원이 주재할 예정이다.

이달 금통위의 기준금리 동결에 무게를 두는 쪽은 총재(금통위 의장)가 공석인 상태에서 나머지 6명의 금통위원이 금리 인상 결정을 서두르지 않고 5월로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금통위가 위원 합의제 의결 기관이기 때문에 총재 참석 여부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오히려 현재 금통위원들 가운데 가장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성향이 강한 주상영 의원이 의장을 맡으면, 회의에서 매파(통화긴축 선호) 목소리가 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의장은 보통 개인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견해가 반으로 갈릴 때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데, 주 위원을 빼고는 현재 대부분 위원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