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썩어 지지력 약화…산림과학원 "산불피해지 토사 4.2배 더 유입"
사방사업 시급…하천·바다 오염, 관광산업 악영향
[동해안산불 한달] ④ "이번엔 산사태 걱정"…호우 피해 걱정하는 이재민
지난달 5일 새벽 발생한 산불로 주택과 산림이 초토화된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 주민들은 요즘 산불 2차 피해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화마가 지나간 지 10일가량 지나자 산불피해 지역에서는 돌무더기와 토사가 도로변으로 굴러떨어지면서 낙석방지용 철망이 군데군데 망가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이 같은 징후가 3개월 뒤 장마철에는 산사태로 변해 마을을 덮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 마을 인근에서는 3년 전에도 봄철 대형 산불이 발생한 뒤 장마철 산사태가 속출해 도로가 통제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산불이 발생한 곳은 3년 전보다 경사가 더 가파른 지역이어서 주민들의 속은 바짝 타들어 가고 있다.

김영기 남양2리 이장은 "산불로 죽은 나무는 물을 흡수하지 못해 장마철에는 산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망가진 낙석 방지망을 고쳐달라고 (관계기관에) 신고했더니 대충해놓고 말았다.

관계기관이 철저한 예방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동해안산불 한달] ④ "이번엔 산사태 걱정"…호우 피해 걱정하는 이재민
산불이 휩쓸고 간 경북 울진에서도 산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울진군 북면이나 죽변면, 울진읍 등 산불 피해지역에는 불에 탔거나 불길이 지나가 고사한 나무가 엄청나게 많이 보였다.

산에 쌓여 있던 낙엽도 상당량 타면서 산불 피해지역에는 맨땅이 그대로 보이는 곳이 많았다.

울진은 경사가 급한 산이 많아 주민들은 국지성 집중호우나 태풍으로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죽은 나무의 뿌리가 쉽게 썩기 때문에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토양 지지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빗물이 땅에 잘 스며들지 않고 썩은 그루터기에 빗물이 고여 산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조사한 결과 2000년 동해안 산불 2년 후에 찾아온 태풍 '루사'로 강원 산불피해지에서는 일반산지보다 약 10배 더 많은 산사태 피해가 발생했다.

2009년 경북 칠곡 산불피해지에서 입체 레이저 스캐너로 계곡으로 흘러드는 토사량을 분석한 결과 일반산지보다 4.2배 많은 토사가 유입됐다.

그런 만큼 토사 유출이나 산사태 등을 최소화하려면 사방사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 결과 산불피해지에서 사방사업을 한 곳과 하지 않은 곳의 토사 유출량은 약 3∼20배 차이가 났다.

녹색 댐 역할을 하던 나무가 타버린 산불 발생지역에서는 수질 오염까지 우려된다.

불에 탄 재와 나뭇가지 등이 하천과 해양으로 휩쓸려 들어가면 수질이 오염될 수 있어서다.

울진군은 지난달 말 산불 피해지역 가운데 계곡물을 마을상수도로 사용하는 5개 마을에 지하수를 공급하도록 전환했다.

산불로 잿물이 유입되면서 계곡물이 오염돼 상수도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알칼리성을 띤 잿물의 독성으로 물고기 등이 집단 폐사하면 수중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울진군 울진읍 온양2리 등 바닷가 마을 주민은 산불이 난 뒤 비가 오기 전에 미역을 서둘러 채취했다.

비가 내려 잿물이 바다에 유입되면 해삼이나 미역이 녹거나 폐사할 수 있다.

강릉시는 산불 발생지역 잿물과 오염물질이 하천과 바다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천에 오탁방지막을 설치했다.

[동해안산불 한달] ④ "이번엔 산사태 걱정"…호우 피해 걱정하는 이재민
동해시의 핫 플레이스인 묵호동 등대마을은 이번 산불로 관광자원이 초토화됐다.

동해시는 최근 10년간 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좁은 마을 길을 따라 벽화를 조성해 유명 관광지로 바꿔놨으나 산불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최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벽화가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등대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관광 명소다.

시는 등대마을 특유의 감성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 이곳을 '특별 도시·문화 재생사업' 대상지로 지정해 국가 차원의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김태호 묵호동 주민자치위원회 사무국장은 "산불로 주택이 불에 타 흉물스럽게 변하면서 찾는 사람이 70∼80% 줄었다"며 "정부나 강원도 차원의 뉴딜사업과 연계해 화마가 지나간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예전의 감성마을로 복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해안산불 한달] ④ "이번엔 산사태 걱정"…호우 피해 걱정하는 이재민
[동해안산불 한달] ④ "이번엔 산사태 걱정"…호우 피해 걱정하는 이재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