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수도 키이우 인근을 되찾은 가운데 러시아군은 동부 지역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다음달 9일 승리를 거뒀다고 과시하려면 동부 지역이라도 장악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운영 등 우주사업에서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압박도 했다.

한나 말리아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2일(현지시간) “키이우 전 지역이 침략자(러시아)로부터 해방됐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전날인 1일 기준으로 키이우 인근 마을 30여 곳을 수복했다. 러시아군이 퇴각한 키이우 인근에서는 민간인이 다수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전쟁의 참혹상을 드러냈다. 유럽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조사를 촉구했다.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도 예고했다.

러시아군은 키이우 인근에서 철수하는 대신 우크라이나의 제2도시인 동부 하르키우,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등 동부 지역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친러시아 성향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을 거점으로 우크라이나 동부를 점령하는 방향으로 러시아가 전략을 수정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CNN방송은 미 정보당국 소식통을 인용, 푸틴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다음달 9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자축할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이날은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때 승전보를 울리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이라도 차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최대 물류거점인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도 폭격을 이어갔다.

이날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드미트리 로고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사장이 우주사업에서 서방과의 협력을 중단할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로고진은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일본 등과의 ISS 운영 협력 중단에 대해 구체적으로 곧 러시아 정부에 보고할 예정”이라며 “이들의 제재는 러시아 경제를 파탄 내고 굴복시키려는 목적”이라고 발언했다. 러시아는 ISS의 고도를 상공 400㎞ 수준으로 유지하는 등 주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러시아가 손을 떼면 ISS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협상팀 소속인 다비드 아라카미아는 이날 우크라이나 TV방송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직접 협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양측 정상이 터키에서 회동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럽 정보당국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장기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러시아 측은 “최고위급 회의에 보고할 만큼 우크라이나와의 합의안이 준비된 건 아니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한편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했다. 크렘린궁은 루블화 결제 대상을 천연가스에서 다른 상품들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