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영화와 막장 드라마도 울고 갈 영화 'B컷'
장점을 단 한 가지라도 찾기 힘든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요소가 비판받아 마땅한 영화는 더더욱 그렇다.

거물급 정치인과 그의 휴대전화에 담긴 비밀을 거머쥔 남자의 추격전을 담은 영화 'B컷'은 시놉시스만 봐도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기와 나', '음치클리닉', '색다른 그녀' 등 주로 코미디 영화를 선보였던 감독(김진영)에게 대단한 완성도와 서스펜스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B컷'은 극장을 찾을 관객뿐 아니라 IPTV로라도 볼 시청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영화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을 잡기조차 어렵다.

성인영화와 막장 드라마도 울고 갈 영화 'B컷'
무엇보다도 비뚤어진 성 관념과 시대착오적인 젠더 감수성은 반드시 짚고 갈 문제다.

대권을 꿈꾸는 국회의원 태산(김병옥 분)은 배우 출신 아내 민영(전세현)을 각종 고문 도구를 갖춘 방에 가둬 놓고 채찍으로 마구 때리고 강간한다.

예비 며느리를 성폭행하고 스트레스가 심하면 외간 여자들에게서 성 상납을 받는다.

관객들이 왜 이런 장면들을 돈까지 내고 봐야 할까.

민영은 태산을 "변태성욕자"라고 지칭하지만 명백한 성범죄자다.

태산의 휴대전화에서 아내를 폭행한 사진을 발견한 수리업자 승현(김동완)도 정도만 다를 뿐 매한가지다.

고객이 데이터를 복구해달라며 맡긴 휴대전화에서 헐벗은 그의 사진을 발견하고 이를 빌미로 돈을 달라고 협박하는 장면이 그저 코믹스럽게 그려진다.

수많은 여성들이 불법으로 유출된 사진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불과 얼마 전 n번방 사건이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다는 점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조심스러워 했어야 할 장면이다.

영화가 승현을, 민영을 보호하는 '선한 남자'로 묘사하려 노력하는 점도 바닥난 감수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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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베드신도 너무나 많다.

'B컷'에 나오는 모든 베드신이 그 효용에 대한 의문이 들게 하지만 특히 태산과 국회의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상대 후보가 연인과 섹스하는 장면은 왜 필요한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승현과 민영은 왜 갑자기 사랑에 빠져 캠프장에서 서로의 몸을 탐하는가.

스크린에 관객의 눈길을 잡아두기 위한 의도였다면 지독한 실패다.

의도가 빤한 나체의 향연은 절로 고개를 돌리게 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생뚱맞은 섹스 신의 남발과 노골적으로 여자 캐릭터의 둔부를 확대한 카메라 앵글은 성인영화도 고개를 숙일 것 같다.

개연성이 거의 없다시피 한 스토리 전개는 막장 드라마도 울고 갈 만하다.

태산은 학대 증거를 휴대전화에 보관한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해놓고도 새 휴대전화를 사러 가게 해주고, 친절하게도 개인용 휴대전화를 서재 책상 위에 올려놓기까지 한다.

국정원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정보력을 갖춘 사내들은 어설픈 수리업자 하나를 잡지 못하고, 코앞에서 총을 맞은 남자는 기적처럼 살아난다.

이야기 전개를 위해 모든 상황을 짜 맞춘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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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연출 또한 러닝타임 내내 눈을 괴롭히지만, 그중에서도 태산과 그의 아들의 비극적 결말을 담은 후반부 장면은 헛웃음마저 나온다.

요즘 일일 연속극에서도 쓰지 않을 법한 배경음악과 클로즈업 등은 막장 드라마를 풍자하기 위해 일부러 넣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김동완은 시종 특유의 연속극 톤 연기를 선보이고, 김병옥은 과도한 오버액션으로 전혀 사이코 같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제목이 'B컷'이라고 해서 B급 영화를 기대하면 큰 오산이다.

그런 축에 끼지도 못하는 졸작 중의 졸작이다.

김 감독은 24일 시사회 전 무대 인사에서 "영화가 별로라면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오는 30일 개봉. 상영시간 95분.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