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왔던 2마리 봄소식과 함께 떠나
[유형재의 새록새록] 강풍 불고 대형산불 난 날 떠난 흰꼬리수리
봄이 오니 겨울이 떠났다.

작년 12월 초 강원 강릉시 남대천을 찾았던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받는 맹금류 흰꼬리수리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강풍이 거세게 불어 강릉과 동해, 삼척과 울진 등 동해안에 대형산불이 발생한 며칠 전 북쪽의 고향으로 떠났다.

산불 연기가 발생지점부터 30㎞가량 떨어진 남대천을 비롯한 강릉시 내까지 자욱하게 만들고 매캐하던 그 날 전후다.

남대천은 강릉시 내 한복판을 흐르는 하천이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강풍 불고 대형산불 난 날 떠난 흰꼬리수리
작년 12월 초 성조가 찾아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이후 그보다 좀 더 어린 개체까지 모두 2마리가 겨울을 보냈다.

가끔 지나가던 흰꼬리수리가 들리면 이들 2마리는 새로운 개체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힘을 합해 몰아내기도 하는 등 터줏대감 역할을 했다.

직접 공중에서 위협하는 행동을 하며 영역을 지키기도 했다.

먹잇감을 잡으면 투닥거리는 모습을 가끔 연출하기도 했지만 어린 개체가 잡아 성조에게 슬쩍 비켜주는 등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강풍 불고 대형산불 난 날 떠난 흰꼬리수리
[유형재의 새록새록] 강풍 불고 대형산불 난 날 떠난 흰꼬리수리
그러나 이들은 몸길이가 80∼94㎝에 이를 정도의 크고 육중한 맹금류인데도 토종 텃새에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곳 흰꼬리수리는 주로 죽은 물고기를 먹이로 삼는데 물고기를 건져 내 모래톱에서 먹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어디서인지 까치와 까마귀 무리가 여지없이 나타나 뺑 둘러싸고 꼬리를 물어뜯거나 올라타 발길질을 해 대는 등 귀찮게 했다.

영역 침범에 대한 저항에다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얻어먹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텃새의 이런 행동에 흰꼬리수리는 자리를 털고 날아간다.

또 흰꼬리수리가 물고기를 사냥하면 갈매기가 물고기를 빼앗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쫓아가기도 한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강풍 불고 대형산불 난 날 떠난 흰꼬리수리
날개를 펴면 엄청난 크기에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 등 위용을 한껏 자랑하는 맹금류지만 이곳에서의 겨울나기는 그렇게 녹록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봄이 오고 2월 하순 2마리 가운데 성조가 먼저 고향 북쪽으로 떠났다.

혼자 남은 흰꼬리수리는 남쪽에서 겨울을 보낸 더 어린 흰꼬리수리가 귀향 중 남대천에 들르면서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어린 나그네 흰꼬리수리는 물고기 사냥을 매우 활발하게 했고, 터줏대감의 먹이를 빼앗고자 공격을 일삼기도 했다.

그렇게 보름 정도 함께 보내다 터줏대감이 먼저 떠나고 귀향 중 들린 어린 흰꼬리수리는 혼자 며칠을 더 지내다 강릉에 산불이 난 시기에 홀연히 떠났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강풍 불고 대형산불 난 날 떠난 흰꼬리수리
한때 4∼5마리의 흰꼬리수리가 찾던 남대천, 참수리를 비롯해 10여 마리까지 찾았던 경포호에는 최근 몇 년 사이 1∼2마리로 찾는 개체가 크게 줄었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남대천 주변의 급격한 개발 때문인지, 아예 개체가 줄었기 때문인지는 확실히 모른다.

올해 겨울에는 더 많은 흰꼬리수리가 찾아와 남대천 조류세계를 호령하길 기대해 본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강풍 불고 대형산불 난 날 떠난 흰꼬리수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