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측근 대거 부동산 보유…"러 갑부 놀이터로"
중동, 러와 군사협력 강화…미국엔 아랍의 봄·이란 핵합의 등으로 불만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러시아 갑부들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 중동 휴양지에서 보란 듯이 제재 망을 피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중동 국가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동안 미국이 중동의 불만을 키워오는 동안 러시아가 유대관계를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 침공] 러시아 감싸는 중동…제재 도피처로 부상한 두바이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두바이 등 중동의 고급 휴양지가 러시아 신흥재벌인 '올리가르히' 등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약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안보분야 전문 싱크탱크인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연계된 최소 38명의 사업가와 정부 관료들이 두바이에 수십 채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공섬 '팜 주메이라'에는 러시아의 지방정부 수장 출신부터 원전 사업가, 건설 재벌, 정치인, 벨라루스 담배 재벌 등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부동산을 보유 중이라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인들이 두바이에 보유한 부동산의 가치는 총 3억1천400만달러(3천860억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소유자 중 6명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고, 제재를 앞둔 나머지 올리가르히 등은 이곳에 요트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으로선 두바이에서 행운을 누리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여러 국가가 러시아 올리가르히 등 푸틴 대통령의 이너서클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에 나섰지만 두바이는 이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UAE는 중동 안보 문제에 있어 미국과 밀접한 협력 관계에 있지만 최근 외국인의 투자를 받으면서 자금출처 등을 잘 묻지 않아 러시아 갑부들의 인기 '놀이터'가 돼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미국 재무부 자문역을 지낸 애덤 스미스는 "제재는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힘이 있다"며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기꺼이 하려 하는 금융 중심지가 있다면 전체적인 제재를 약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UAE의 태도는 러시아의 침공 문제를 두고 미국과 몇몇 아랍국들 사이에 형성된 다소 불편한 관계를 보여준다고 NYT는 지적했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나서기보다는 오히려 러시아와 유대관계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UAE와 사우디는 미국의 석유 증산 요구를 묵살했고, 이집트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에 숨죽이면서 러시아로부터 원전 건설 자금을 빌렸다.

두바이에 체류 중인 한 러시아인은 NYT에 "러시아인으로서 외국에 있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두바이에선 다르다"라며 "두바이에선 러시아인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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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부동산 업자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인의 부동산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라며 "한 가족은 방 3개 아파트를 영구 임대하면서 월세로 1만5천달러(1천840만원)를 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NYT는 철강 거물이자 러시아 하원 의원인 안드레이 스코치의 고급 요트가 두바이 앞바다에 정박해 있고 영국 축구단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보잉 787기가 최근 현지 공항에서 이륙하는 등 제재 리스트에 오른 러시아 갑부들의 요트와 전용기 등이 두바이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최근 십여 년간 UAE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NYT는 진단했다.

이들 국가에 무기를 수출하고 군사 훈련도 시키면서 유대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중동 지도자들은 2011년 '아랍의 봄'을 지지한 미국 정부의 태도에 분노했고, 걸프만 인근 국가들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그들의 적인 이란과 핵 합의를 한 데 대해 배신당했다고 여겼다고 NYT는 분석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도 그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미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데 대해 좌절했다고 한다.

중동 지도자들과 가까운 사람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중동이 취하는 이 같은 중립적인 태도는 미국에 '아무것도 당연하게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 얘기한다고 NYT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