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腸)에 있는 미생물로 각종 치료제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건 2006년이었다. 똑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쌍둥이의 변을 각각 실험 쥐에 주입했더니, 둘 중 뚱뚱한 사람의 변이 들어간 쥐만 비만이 된 데서 출발했다. ‘비만의 원인은 유전자와 생활습관’이란 통념을 깨고 장내 미생물이 대사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이후 건강한 사람의 장에서 추출한 미생물이 대사질환을 누그러뜨릴 뿐 아니라 ‘암세포 공격수’인 T세포도 활성화시킨다는 연구가 더해지면서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은 차세대 항암제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내외 바이오 벤처들이 앞다퉈 뛰어들었고, 글로벌 제약사들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국내 선두기업인 지놈앤컴퍼니가 미국 머크(MSD)와 손잡는 등 마이크로바이옴을 둘러싼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간 ‘이합집산’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놈앤컴퍼니, 세계시장 노크

커지는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지놈앤컴퍼니, 美머크와 협업
지놈앤컴퍼니는 MSD와 담도암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 임상 2상을 공동 수행한다고 6일 밝혔다. 이 회사의 마이크로바이옴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GEN-001’과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함께 쓰는 임상이다. 연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는 게 목표다.

면역항암제는 암세포는 물론 정상세포도 공격하는 탓에 부작용이 큰 화학항암제와 달리 사람 몸에 있는 T세포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원리로 암을 치료한다. 키트루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면역항암제다. T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원리여서 흑색종 대장암 폐암 등 여러 암을 치료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배지수 지놈앤컴퍼니 대표는 “담도암은 넘버원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로도 풀지 못하는 ‘치료 사각지대’”라며 “키트루다에 GEN-001을 더해 난제에 대한 해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협업’ 불붙은 마이크로바이옴업계

지놈앤컴퍼니가 MSD와 손잡은 건 통상적인 파트너십보다 큰 의미라고 바이오업계는 평가한다. 면역항암제를 상용화한 몇 안 되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잇따라 지놈앤컴퍼니를 콕 집었기 때문이다. 지놈앤컴퍼니는 독일 머크·화이자가 개발한 면역항암제 ‘바벤시오’와 위암·요로상피암·두경부암·비소세포폐암 등에 대한 병용 임상도 진행하고 있다. 그만큼 지놈앤컴퍼니의 후보물질이 면역항암제와 ‘궁합’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그동안 갖고 있던 마이크로바이옴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걷어내는 것으로 보인다”며 “면역항암제 시장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옵디보’를 개발한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가 미국 베단타바이오사이언스와 손잡는 등 ‘마이크로바이옴 협업’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기업들도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바이오랩은 전임상 단계인 면역항암 후보물질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건선 치료제와 염증성 장질환 치료제로 미국 등에서 임상 2상 중이다.

CJ바이오사이언스(옛 천랩)는 면역항암제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3년 내에 미국에서 임상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염증성 장질환 치료제 전임상을 마쳤다.

종근당바이오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의 간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국책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또 2017년 서울대와 공동으로 장내 미생물 은행을 설립하고 인체 유익균을 연구하고 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