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원자재’로 주목받는 탄소배출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도 곤두박질쳤다. 원유 등 각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게 오히려 탄소배출권 시장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에 투자하는 국내 상장 ETF ‘KODEX 유럽탄소배출권 선물ICE(H)’와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S&P(H)’는 각각 18.08%, 18.17% 급락했다. 휴일 사이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이 떨어진 게 한꺼번에 반영돼서다. 영국 런던 ICE 국제선물거래소에서 탄소배출권 선물은 지난달 28일과 이달 1일 각각 6.7%, 16.3% 하락했다.

탄소배출권은 기업 등이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일정 기간 배출한 탄소량이 할당량보다 많으면 탄소배출권을 사들여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각국 정부가 환경규제를 강화하자 유럽 탄소배출권 ETF는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9%가량 오르며 변동장세에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증권가에서 분석하는 최근 탄소배출권 가격 급락의 주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박수민 신한자산운용 ETF운용센터 부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경기 민감적 성격의 탄소배출권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공급 차질 우려로 각종 원자재 가격이 튀어오르는 와중에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글로벌 교역을 위축시킬 것이란 두려움이 커졌다.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가고 에너지 소비량이 많아야 탄소배출권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오르는데, 정반대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 개입 가능성까지 있다. 이정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탄소배출권 가격 급등으로 유럽에서 가격 조정에 관한 논의가 나오자 최근 하락세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 비해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이 더 큰 폭으로 하락한 이유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던 독일 정부는 올해 말까지 모든 원전을 퇴출할 예정이었지만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이 계획을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 화석연료의 대체재로 남는 셈인데, 탄소배출량이 많을수록 수요가 늘고 가격이 오르는 탄소배출권 시장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