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부동산, 설계된 절망'
게토가 된 공영주택…미국은 흑백 주거를 어떻게 갈라놓았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치먼드시 인구는 5년 만에 4배 늘었다.

군수산업 일자리를 찾아 남부에서 넘어간 흑인들이 많았다.

연방정부가 주택난을 해결하려고 지은 공영주택에는 대부분 흑인들이 입주했다.

백인에게는 교외에 영구주택을 짓도록 지원했다.

경찰은 흑인과 백인이 섞여 생활하지 않도록 오락시설 이용시간마저 분리했다.

미국 현대사·정책 연구자인 리처드 로스스타인은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책 '부동산, 설계된 절망'에서 20세기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의 주거지역이 분리된 이유를 파헤친다.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끼리 모여사는 사적 관행이 아니라, 공공정책을 이용한 법률적·의도적 차별이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국 정부는 1917년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발생하자 공산주의 발호를 막으려고 주택 소유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연방주택관리국(FHA)을 만들어 대출을 지원했다.

백인들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국가보증 대출을 받는 사이, 흑인들은 임시로 지어진 다가구 저택이나 백인이 남기고 떠난 빈집에 살았다.

지방자치단체는 조례와 도시계획을 통해 교묘하고 철저하게 흑백을 분리했다.

1910년대 세인트루이스시는 저소득층이 감당할 수 없는 단독주택 단지 건설을 추진했다.

'1급 주택지구' 등의 이름으로 특정 지역에 단독주택 이외 건물을 불허하면 사실상 백인만 거주하는 지역이 됐다.

백인 동네에는 금지된 여관·술집·나이트클럽 등이 흑인 동네에서는 허용됐다.

연방정부는 몇 년 뒤 세인트루이스식의 '배타적 경제구역'을 노골적으로 권장했다.

게토가 된 공영주택…미국은 흑백 주거를 어떻게 갈라놓았나
20세기 중후반 흑백 주거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그러나 중립을 표방하는 정책으로는 이미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리기 어려웠다.

노동시장의 인종차별 약화로 상당수 흑인이 중산층에 편입됐을 때는 이미 교외 집값이 접근 불가능할 정도로 뛴 뒤였다.

저소득층 가구는 주거지원 보조금으로 흑인 동네에서 셋방살이를 했고, 주택개발업자들도 정부 보조금을 받아 흑인 동네에 아파트를 지었다.

저자는 "오늘날의 연방정부, 주 정부, 지방자치체의 정책 사업들은 흑백 주거 구역 분리를 약화시키기보다는 더욱 강화시켰다"고 지적한다.

계층에 따라 분리된 주거지가 집값 상승과 교육 격차로 고착화하는 현실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화 시기 중산층 중심의 주택정책으로 목동 신시가지가 개발되자, 이곳을 정점으로 교육 특구가 형성되고 주변 주거지가 위계화했다.

조귀동 작가는 해제에서 "주거지의 위계는 정확히 초등학교 학업 성취도와 일치한다"며 "도시 공간 구조가 불평등과 차별을 재생산하고 세대 간 이동성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기제라는 점, 그리고 그 공간 구조에는 정치적 의사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말했다.

갈라파고스. 김병순 옮김. 504쪽. 2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