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인플레 시대' 더 커진 국가부채 위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지난 21일 국회를 통과했다. 소상공인 332만 명에게 1인당 300만원의 방역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연초부터 추경이냐”는 우려와 비판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과 야당의 ‘1인당 1000만원’ 주장에 묻혀버렸다. 애초에 전 국민에게 돈을 뿌릴 게 아니라 손실 보상에 초점을 맞췄어야 한다는 지적은 때늦은 탄식일 뿐, 어느 정도의 손실 보상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큰 상태이기도 하다.

이번 추경과 같은 개별 사안보다 앞으로 더 진지하고 치열하게 우리가 걱정해야 할 문제는 큰 그림에서의 재정 운용 방향이다. 구체적으로는 세금 등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더 쓰겠다는 현 정부의 기조를 유지할 것인가다. 코로나19 때문에 부각되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팬데믹 이전부터 대규모 적자 재정을 짰고,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밝혔듯이 2021년부터 매년 100조원 넘게 재정 적자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모자란 돈은 국채 발행, 즉 빚을 내 대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추경 추진의 논거 중에 지난해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세금이 많이 걷혀 그 돈을 쓰면 된다는 게 있지만, 그 추가 세수로 애초에 계획된 적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지 재정이 흑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정치권이 나랏빚에 대해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점에서 국가 부채를 다시 점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에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세계적으로 물가가 잠잠한 것이 이슈였다. 코로나19로 각국이 엄청나게 돈을 풀었는데 물가는 별 반응이 없는 것이 의아한 상황이었다. 사실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율은 큰 흐름으로 보면 1980년대 중반부터 무려 30년 가까이 지속된 현상이라, 최소한 선진국에서는 이제 인플레이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명확하게 진행되고 이에 따라 주요국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지금, 안정적인 물가와 낮은 이자율을 전제로 짠 적자 재정 전략은 지속될 수 없다. 이자율은 빌리는 돈의 대가여서, 이자율이 올라가면 국채든 회사채든 채권을 발행하는 주체가 예전보다 불리한 상황과 조건에서 빚을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단기에 끝날 현상이라면 소나기만 피하자는 마음가짐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최소 한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세계적인 탄소중립 움직임과 이로 인한 에너지 비용 상승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쳐 에너지 비용 상승이 당장 주목받는 면이 있지만, 국제 정세 불안이 아니더라도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주창된 바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술 발전 속도라는 변수가 있지만 에너지 비용 상승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둘째는 세계적 차원의 생산가능인구 정체 및 감소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가 2020년 출간한 책 《인구 대역전》에서 강조한 것처럼,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연령대의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줄어들고 반대로 생산 활동보다 소비를 주로 하는 고령층이 증가하면 물가 상승 압력이 생긴다. 그동안은 중국의 생산가능인구 증가가 인플레이션을 막았지만, 중국도 생산가능인구의 정점을 지났다.

두 요인 모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및 공급을 위축시킨다. 생산 및 공급이 위축되면 수요가 있어도 물가만 많이 오르고 경기는 시원치 않게 된다. 인플레이션 걱정이 없을 때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춰 돈을 풀면 됐지만, 이제는 금리를 올리고 돈줄을 죄어야 할 때다. 인플레이션 통제가 한국은행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빚을 계속 더 내서라도 지출을 늘리려면 한국은행과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도 국채 발행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 재정안정성에 대한 대외 신뢰가 크게 훼손될 것이다.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시대에 선택지는 많지 않다. 정치권이 정신 차리고 이를 제때 인식하기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