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低인플레 일본이 부럽지 않은 이유
새해를 맞은 글로벌 경제에 인플레이션 논의가 여전히 뜨겁다. 특히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의 최고치인 전년 동월 대비 7.0%를 기록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통화정책 관련 논의도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을 넘어 정책금리 조기 인상 등 긴축 기조로의 변경으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물가 전망 등 통화정책에 대한 금융시장의 인식에도 지난 몇 개월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작년 중반만 해도 글로벌 경제 회복에 맞춰 주요국에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확장 정도를 점차 줄이고, 물가 급등을 일으킨 공급망 차질이 해소되면 올해부터 물가가 안정을 찾을 것이므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하지만 지난 가을 이후에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기후변화 대응정책, 보호주의적 통상정책 등과 연계돼 금방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졌다.

겨울 들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한 것도 인플레이션 전망을 더 비관적으로 만드는 요인이었다. 각국이 방역 조치를 다시 강화하고 연장하면 공급망 차질이 더욱 오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변이 바이러스가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소식이 반갑긴 하지만, 거시경제정책 담당자들에게는 그 자체가 상당한 불확실성이다. 특히 인플레이션의 상당 부분이 공급 측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가운데, 긴축적 통화정책이 경기 후퇴 가능성을 키울 것임을 알면서도 물가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올려야 하는 딜레마 같은 상황은 중앙은행에 큰 부담일 것이다.

이와 같이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딜레마에 처한 가운데 일본은 단연 이목을 끈다. 일본은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0년 10월부터 1년간 평균 -0.6%로, 하락한 바 있으며 작년 10월부터 기저효과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겨우 0%대의 플러스를 보였다. 민간소비 회복세가 약한 이유도 있지만 인플레이션 문제에서 너무 예외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당연히 일본도 글로벌 공급망 차질 문제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는데,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작년 5월 이후 매월 5%를 넘었고 4분기에는 평균 8.7%를 기록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 기업들 역시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비용 상승 부담을 상당히 크게 느끼고 있지만, 이를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전가하지 않고 영업이익 축소 등으로 견디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부러운 건 아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마음도 결코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현재 일본의 물가 상황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디플레이션 기간에 지속됐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실패가 남긴 흉터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저물가를 경험한 일본 경제에서는 가계가 소비를 늘리는 데 매우 신중하고 기업도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분위기가 고착돼 있는데, 코로나 위기로 위축된 소비자들에게 원자재 가격 상승을 전가하기 위해 최종재 가격을 올리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되고 결국 경제 전반의 혁신 역량과 생산성이 낮아지게 된다. 근로자들도 임금 상승은 물론 고용 안정을 기대하기 어려워져 소비가 더욱 위축되는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일본의 속사정을 생각해보면 미국과 일본의 중간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는 한국은 정책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물론 통화정책 목표가 주택 가격이나 환율 안정까지 포함한다면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주택 공급과 외환 건전성 등 다른 요인들을 고려해보면 통화정책의 본질적 역할은 역시 인플레이션 대응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한국은행이 코로나 사태 이후 세 번째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아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너무 급하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이즈음에서 일본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향후 한국 경제에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질 때도 지금처럼 충분히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다짐하길 바란다. 우리가 뒤를 한 번씩 돌아보는 것은 미련 때문만이 아니라, 뭔가가 따라오고 있을 때 그에 대응할 준비를 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