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3분기 합계출산율이 0.82명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합계출산율은 2018년 1명 미만인 0.98명이 되면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2019년 0.92명, 2020년 0.84명으로 회복의 기미가 전혀 없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기 때문에 2명이 넘어야 인구가 유지된다고 본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2명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1984년인데, 그동안은 평균 수명 연장으로 인구가 감소하진 않았지만 작년부터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됐다. 대한민국은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전통적 사고방식을 벗어나 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온 시점부터 어느 선진국이나 출산율 하락을 겪었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출산율 하락 속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빨라 세계 최저 수준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인구 감소가 심각한 문제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출산이 할 만한 선택이 아니라면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국가 전체적으로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중증화율이 낮은 젊은 연령층에서 백신 부작용을 우려해 접종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논란이 되기는 해도 ‘백신 패스’ 도입 확대 등 반강제로 백신 접종률은 올릴 수 있겠지만 출산은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개인의 선택이란 면에 주목할 때 출산이란 선택도 이득과 부담의 비교 결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출산에 대해 이득이란 표현이 어색하긴 하지만 출산으로 인해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크다고 인식하면 출산을 선택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까지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출산에 따르는 부담을 덜어주는 데 초점이 있었다. 비록 별 상관이 없는 정책까지 저출산 정책의 명분을 달고 지출됐다는 문제가 있지만, 정부로선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간의 예산 투입으로 출산의 손익 계산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기 때문에 이제 두 가지 방향으로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첫째는 체감하는 부담을 줄이는 부분에 확실하게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고, 둘째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사회 전반이 왜 이렇게 이득으로 기대하는 바가 적은지 짚어보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의식에 대해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인 퓨연구센터가 최근 내놓은 조사 결과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퓨연구센터에서는 17개 선진국, 약 1만9000명의 성인에게 무엇이 인생을 의미있게 채워주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주는지 주관식으로 묻고 응답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가족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의미로 꼽혔다. 17개국 중 14개국에서 가장 많이 꼽은 요인이 가족이었다. 둘째는 직업 및 커리어, 셋째는 물질적 풍요였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내용이다.

놀라운 것은 한국의 결과다. 한국의 1위는 물질적 풍요(19%)다. 2위는 건강(17%), 3위가 가족(16%)이다. 20대에 초점을 맞춰보면 가족을 중요하게 꼽은 응답자 비율은 3%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의 20대가 친구 등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율이 대체로 20%를 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20대는 그 비율도 3%에 불과하다. 가족이든 친구든 인간적 관계에 부여하는 가치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확연히 낮은, 각자도생의 집합체가 현재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자녀가 농경사회처럼 노동력을 보태는 것도 아니고, 부모에 대해 딱히 부양 의무를 느끼지도 않는 시대니, 이제 출산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서적 만족뿐이다. 그런데 가족이 돈보다 인생에 의미를 주지 않는 사회라면, 부담만 낮춰준다고 가족을 이루려 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필자 주변의 특히 딸을 둔 여성 중에 딸이 꼭 결혼하고 출산하길 바란다는 이가 거의 없다. 결혼과 출산은 으레 하는 것이던 세대의 이런 고단한 심정은 젊은 세대에게 얻는 것 없이 잃는 것만 부각돼 전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우울하게 전망한다. 대대적인 접근법의 전환 없이는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