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영남대, 28일 '독도 연구 새 지평' 심포지엄
"'독도는 우리와 관계없다' 1877년 日지령, 나가사키에도 적용"
일본 메이지 정부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이 1877년 3월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고 명시한 '태정관지령'이 시마네현뿐만 아니라 나가사키현에도 적용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한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재단이 24일 공개한 '독도 연구의 새 지평' 심포지엄 발표문에서 1877년 7월 나가사키현이 울릉도 개척 계획을 제출하자 일본 내무성이 태정관지령에 따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나가사키현에 앞서 시마네현은 1876년 울릉도와 독도의 관할 구역 포함 여부를 내무성에 문의했고, 내무성은 태정관에 판단을 의뢰했다.

이에 태정관은 이듬해 두 섬이 일본과 관계없음을 명심하라는 지령을 내무성을 거쳐 시마네현에 하달했다.

박 위원은 도쿄도립대 도서관이 소장한 '하나부사(花房) 문서'에서 기타지마 히데토모(北島秀朝) 나가사키현령이 마련한 울릉도 개척 계획과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내무경 회답을 분석했다.

기타지마는 나가사키가 상하이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항로의 기항지라는 점을 고려해 울릉도에 등대를 설치하고, 섬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오쿠보는 기타지마의 울릉도 개척 계획에 대해 "막부였을 때 해당 섬 사건에 대해 조선과 여러 차례 왕복한 서류를 충분히 조사해 본방(本邦·본국)과 관계가 없다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시마네현에도 그 취지를 지령해 뒀던 내용이 있으므로 그 취지에 따라야 함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은 "나가사키현은 다른 현보다 먼저 울릉도를 개척해 이익을 누리려 했다"며 "오쿠보가 나가사키현령에게 보낸 회신은 태정관지령이 일본 정부 안에서 효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문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쿠보의 회신 공문을 조선으로 파견된 하나부사가 입수해 보유했는데, 내무경 지시사항을 외무성이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영남대와 함께 28일 서울 서대문구 재단 대회의실에서 여는 심포지엄에서는 새로운 자료를 통해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입증하는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김종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있는 '해동전도'(海東全圖)가 19세기 후반 미국 정부와 학계에서 독도가 조선 영토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 자료라고 설명한다.

송휘영 영남대 연구교수는 1905년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할 무렵 독도 어장 경합 과정을 분석하고, 박지영 영남대 연구교수는 1905년 '죽도어렵합자회사' 설립 과정을 고찰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