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눈물의 비디오’로 기억되듯 코로나 팬데믹 비극의 상징 장면은 ‘눈물의 삭발식’이다. 자영업자 299명이 엊그제 연 광화문 집회도 그랬다. 눈물 반, 분노 반이었다. “단 2년 만에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나라에서 문 닫으라면 닫고, 기다리라면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손에 남은 건 명도소송장과 압류독촉장뿐입니다.”

눈물의 삭발식 후 그들은 “이제 법을 지킬 수가 없다”며 ‘24시간 영업투쟁’을 선언했다. 국가에 대한 저항 선언이다 .

들끓는 절규 속에 자영업 지원 추경이 추진되고 있지만 난항이다. 여야는 정부가 제안한 ‘14조원으로는 어림없다’며 35조·50조원의 천문학적 지원을 공언했다. 하지만 스스로 정한 통과시한 14일이 훌쩍 지났고, 이제 대선 이전 통과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난항 배경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고 부족’이다. 직전 정부에서 36.0%로 물려받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오랜 마지노선이던 40%를 단숨에 뚫었고, 올 연말엔 50% 돌파가 확실시된다. 가속도는 더 아찔하다. 향후 5년간 국가부채 증가율 예상치는 연 5.4%(국회예산정책처)로 38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 우려에 벌써 국채금리까지 급등세다. ‘책임지고 더 많이 퍼주겠다’던 정치꾼들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이유다.

나라 살림을 불과 몇 년 만에 거덜내 ‘자영업 딜레마’를 키운 주범은 두말할 필요없이 청와대와 거대 여당이다. 문재인 정부가 쌓은 빚은 직전 3개 정부(노무현·이명박·박근혜) 부채 합계에 육박한다. ‘어버이 정부’를 자처하며 ‘관제 알바’를 양산하고, 타당성 조사 없이 지역 민원사업을 뒷문 통과시키는 식의 인기영합적 퍼주기로 일관한 결과다.

정부는 ‘코로나 예외상황 탓’이라지만 핑계에 불과하다. 팬데믹이 초래한 역성장은 2020년(-0.9%) 한 해에 그쳤다. 첫해 성장률이 -5.1%까지 추락한 외환위기 때보다는 덜한 경제 충격이다. 그때와 같은 기업 구조조정용 공적자금 투입도 없었다. 그런데도 코로나 2년의 재정적자비율은 -6.2%로 외환위기 2년(-4.0%)보다 훨씬 높다.

국고 탕진의 빼놓을 수 없는 공범은 홍남기 경제부총리다. 지난주 국회에서 그는 “(국가신용 유지가) 어느 정도 한계에 와 있다”고 폭탄발언했다. ‘재정이 어떤 나라보다 안정적’이라며 자화자찬해오다 느닷없이 고해성사에 나선 것이다. 신용등급이 내려간다면 외환위기 이후 처음 있는 ‘사건’이다.

‘최장수 경제부총리’ 기록을 매일 경신 중인 홍 부총리는 이미 세계경제사의 한 페이지를 예약했다. 2018년 12월 취임 당시 680조원이던 국가부채는 올 연말 최소 1080조원으로 불어난다. 재임 3년여 만에 나랏빚을 60%나 불리고 굳건히 자리까지 지킨 건 세계 어느 경제수장도 흉내조차 내기 힘든 신공이다.

‘자영업 비극’을 외면하고 ‘소고깃국’부터 챙긴 국민도 유죄다. 코로나 2년간 다섯 차례에 걸쳐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지원된 돈은 19조원이다. 반면 두 차례의 재난지원금으로 국민이 받아간 세금은 27조원이다. 70만 영업금지·제한 업종 자영업자에게 4000만원씩 지원할 수 있는 거금이다. “소고기 국거리 샀다는 사연에 울컥했다”며 대통령이 뿌듯해하는 새에 빚더미 속 숨막히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26명의 자영업자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동시대인의 아픔을 감싸지는 못할망정 외려 독촉한 국민 모두가 공범일 수밖에 없다.

국민을 앞세운 국고 털기는 대선판도 장악했다. 여당 후보는 ‘정부에 돈이 넘친다’ ‘국가부채비율 100%를 넘겨도 끄떡없다’는 주술로 유세장을 달군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야당 후보도 만만찮다. 14조원으로 잡힌 초유의 ‘1월 추경’을 여당이 35조원으로 올리자 ‘50조원은 돼야 한다’고 되쳤다. 자영업자 죽이기를 넘어 스스럼없이 미래세대까지 약탈하는 ‘비정 연대’를 단죄할 힘은 오직 주권자에게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