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EU가 두 회사의 합병을 불허하면서 당초 계획했던 ‘조선 빅2’ 체제 개편은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합병이 무산됐더라도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우조선에 대한 산은 관리 체제가 장기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산은은 대우조선 지분 55.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대우조선은 1997년 외환사태를 계기로 자본잠식에 빠진 후 2000년부터 산은이 주도하는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산은의 관리기간이 길어질수록 대우조선의 야성이 사라지면서 준국영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이는 대우조선과 국내 조선업 발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우조선의 경영정상화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산은의 추가 금융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은 등 채권단은 지금까지 대우조선 경영정상화를 위해 4조2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의 민영화 작업도 재추진하겠고 밝혔다. 그는 “대우조선이 군함 등 특수선과 고도의 LNG선 기술을 보유한 상황에서 해외 매각은 불가능하다”며 “국내에서 새 주인을 찾겠다”고 말했다. 새 주인을 찾는 플랜B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작은 규모의 회사가 (대우조선처럼) 큰 회사를 인수하는 등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인수 후보에 대해선 언급을 삼갔다. 그는 “대우조선에 대한 경영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오는 3월께 컨설팅 결과가 나오면 플랜B부터 플랜D까지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방식으로는 구주 매각 대신 신규 자금(뉴머니)을 대우조선에 대거 투입하는 방식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산은은 2019년 3월 체결한 현대중공업그룹과의 본계약에 따라 대우조선 지분 전량을 조선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에 넘기고, 유상증자에 따른 신주를 받기로 했다. 구주 매각에 따른 인수자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 대우조선에 대규모 신규 자금을 공급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회장은 “이런 방식을 추진하면 인수 잠재후보들은 구주 매각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며 “가급적 많은 뉴머니를 대우조선에 투입해 회생시키는 것에 초점을 둘 것”이라고 했다. 산은은 대우조선의 2대 주주로 남아 새 인수자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현대중공업그룹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등 국내 조선 3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날렸다. 그는 “국내 조선산업은 비유하자면 ‘붕어빵 산업’”이라며 “3사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선박을 만들면서 차별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3사의 치열한 경쟁에 따른 저가 수주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국내 조선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조선 3사가 앞장서 저가수주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조선 3사의 자율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을 무기로 저가 수주를 막는 특단의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RG는 조선업체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을 뜻한다.
선주는 은행으로부터 RG 발급을 확인한 후 대금 지급을 시작하고, 조선업체는 미리 지급받은 자금을 활용해 선박제조에 들어가게 된다. RG 발급을 받지 못하면 신규 수주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회장은 “산은이 앞장서 원가율이 90%를 넘으면 RG 발급을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익이 떨어지는 수주의 경우 RG 발급을 전면 중단해 저가 수주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EU 불승인으로 인수가 무산된 현대중공업그룹측엔 EU 집행위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및 불승인 취소소송을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국의 조선산업이 EU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소송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강경민/정소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