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연구자가 쓴 신간 '요망하고 고얀 것들'
"괴물 아닌 욕망 좇는 존재들"…고전소설 속 요괴 열전
조선시대 소설 '전우치전'에는 여우 요괴가 두 마리 나온다.

옥같이 아름다운 처녀, 화려한 미모의 과부로 각각 변신한 요괴들은 주인공 전우치를 유혹한다.

전우치는 한 요괴와 사랑을 나누지만,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구슬을 빼앗는다.

두 번째 요괴를 만나서는 이내 정체를 알아챈 뒤 '하늘의 책'인 천서(天書)를 건네받는다.

두 여우 요괴는 성욕에 사로잡혀 보물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어리석은 동물로 묘사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소설 속 요괴를 분석해 박사학위를 받은 문학 연구자 이후남 씨는 신간 '요망하고 고얀 것들'에서 "현대물에서 인간이나 가축의 간을 먹는 여우의 모습이 많이 부각되지만,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여우 요괴는 성욕이 특히 강하다"고 설명한다.

이어 "한국의 구비설화 중에는 여우 구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여우 구슬이 대개 하늘과 땅의 이치를 터득하게 하는 신묘한 물건인데, 중국 문헌에서는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만드는 물건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그동안 고전소설 77편에서 요괴 158종을 찾아냈다.

책에는 그중 중요하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요괴, 상상을 넘어선 행동을 보이는 요괴 등 모두 20종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고전소설에 나오는 요괴가 흉측한 괴물이 아니라 인간처럼 '욕망을 좇는 존재들'이라고 역설한다.

요괴는 성욕과 식욕은 물론 명예욕이나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등 다채로운 욕구를 추구한다.

'윤하정삼문취록'에는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대단한 식성의 멧돼지 요괴가 등장한다.

요괴는 잔치를 벌이려고 하면 어김없이 출현해 음식도 모자라 접시까지 먹어 치우고, 농작물과 사람도 삼킨다.

하지만 멧돼지 요괴는 엄청난 식욕 때문에 결국 최후를 맞는다.

잘 폭발하는 염초와 단검이 숨겨진 허수아비, 독약이 섞인 술을 잔뜩 먹고는 쓰러져 버린다.

요괴 중에는 안정을 도모하거나 인간 역할에 몰입하고, 심지어 환골탈태하는 존재도 있다.

소설 '옥루몽'에 나오는 여우 요괴는 짐승의 탈을 벗고 불교에 귀의해 극락에서 살아가는 보살로 거듭난다.

요괴 열전 중간중간에는 꼬리가 9개인 여우 요괴가 많은 이유, 12가지로 정리한 요괴의 기발한 능력, 요괴를 알아보는 방법, 요괴의 약점 등 짤막하고 흥미로운 읽을거리들도 실렸다.

저자는 "지금까지 요괴는 보조 인물 혹은 단발적 캐릭터로 치부돼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요괴를 통해 조선 후기에 떠올렸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참신한 발상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눌와. 320쪽. 1만7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