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현장에 답이 있다. 누구나 아는 말이다. 현장 체험을 많이 해야 그만큼 지혜가 쌓인다는 뜻이다.

현장 체험은 오류를 수정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분야든 처음에는 낯설지만 체험하는 과정에서 엇나간 궤도를 차츰 수정하게 된다.

경영자의 글이나 연설도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를 더 늘리고 직접 글을 쓰는 횟수를 늘려가야 한다.

미국의 연설 트레이너 벤 데커(Ben Decker)는 경영자들이 연설할 때 자주 저지르는 실수 5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직원들이 경영 비전을 알고 있으리라 예단해 자신의 비전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 상투적인 표현에 익숙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유연하게 연설하지 못하고 너무 경직된 상태에서 말한다는 것. 넷째, 정보와 숫자 위주로 전달하느라 이야기하듯 말하지 않는다는 것. 다섯째, 참모가 써준 연설문을 책 읽듯이 읽느라 공감을 유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외는 있겠지만 정치인들도 5가지 실수를 오늘도 반복하고 있으리라. 실수를 줄이려면 체험의 기회를 늘려 엇나간 궤도를 수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누텔라 광고 ‘핥지 마세요’ 편(2012)을 보자. 지면 전체를 초콜릿 잼으로 써내려간 카피가 한 눈에 들어온다.

누텔라(Nutella)는 이탈리아의 페레로사에서 생산하는 헤이즐넛 스프레드다. 헤이즐넛은 개암나무 열매이고 스프레드(spread)는 식재료에 얇게 펼쳐 바르는 것이니, 헤이즐넛 스프레드는 발라먹는 초콜릿 잼이다.

금박 포장된 페레로 초콜릿에 들어있는 잼이 누텔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카카오 수입이 줄어들자 헤이즐넛을 섞어 팔기 시작했고 1949년부터는 스프레드 형태로 판매했다.

처음에는 수페르크레마 잔두야로 불리다 1964년에 헤이즐넛의 넛(Nut)과 여자 이름 엘라(Ella)를 합쳐, 누텔라라는 브랜드 이름을 만들었다.

헤드라인은 이렇다. “이 페이지를 핥지 마세요(Please Do Not Lick The Page).” 지면 아래쪽에 누텔라 병과 붓을 배치했다. 병뚜껑을 열자마자 곧바로 카피를 써내려간 듯하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듯이 핥지 말라고 하니 더 궁금해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 <웃음>에서 여주인공 뤼크레스가 누텔라를 손가락으로 찍어먹으면서도 다이어트를 걱정하는 심리를 묘사했다.

광고에서도 핥아보고 싶은 체험의 유혹을 흥미롭게 표현했다. 초콜릿 잼으로 써내려간 헤드라인은 브랜드의 혜택을 체험해보고 싶은 욕구를 유발했다.

정말로 맛이 있나 싶어, 혹시라도 광고 지면을 정말로 핥아본 소비자가 있다면 결코 누텔라 초콜릿 잼을 잊지 못할 것이다.
누텔라 광고 ‘핥지 마세요’ 편 (2012)
누텔라 광고 ‘핥지 마세요’ 편 (2012)
블리스의 광고 ‘포옹’ 편(2012)을 보자. 바디워시 브랜드로 유명한 블리스(Bliss)는 피부 전문가 마샤 킬고어(Marcia Kilgore)가 1996년에 미국 뉴욕의 소호 지역에 블리스 매장을 열면서 시작됐다.

블리스 매장과 블리스 스파를 시작하자마자 헐리웃 스타들 사이에서 ‘잇(it)’ 브랜드로 주목받으며 급성장을 거듭해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킬고어는 글로벌 뷰티 업계에서 상징적 인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그녀는 1999년에 블리스의 지분 70%를 프랑스의 모엣헤네시·루이비통(LVMH)에 넘기고 영국에서 화장품 ‘소프 앤드 글로리’를 창업해 또 다시 히트 브랜드로 키워냈다. 블리스는 현재 우리나라의 서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주요 도시에 진출해있다.

유럽 동부의 내륙에 있는 몰도바공화국(Republic of Moldova)에서 집행된 이 광고에서는 한 여성이 웃으며 샤워하는 장면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여성의 뒷모습을 자세히 보면 비누 거품으로 만들어진 남자의 두 손이 여성의 등을 꼭 껴안고 있다. 자신의 남자가 부드러운 손길로 자기 몸을 포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여성이 샤워를 즐기고 있는 순간을 표현했다.

연인이 꼭 안아주던 순간을 상상하며 샤워하면 얼마나 행복한 마음일까 궁금해진다. 지면 아래쪽에 있는 카피는 이렇다. “당신 몸의 진정한 케어(Really cares of your body).”

광고가 나가자 샤워할 때 따라해 봐야겠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구체적인 체험을 유도하는 광고다.
블리스 광고 ‘포옹’ 편 (2012)
블리스 광고 ‘포옹’ 편 (2012)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체험(Experience)이다. 어떤 일을 실제로 보고 듣고 겪는 체험은 이론이 아닌 실제에 가깝다.

지금은 체험 마케팅의 시대이기도 하다. 호캉스라는 신조어는 그 전에는 없었지만 2015년 이후부터 생긴 말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바캉스를 가느니 시원한 호텔에서 호텔과 바캉스를 동시에 체험하자는 호캉스는 체험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다.

누텔라 광고에서나 블리스 광고에서는 상품의 혜택을 직접 자랑하지 않고 실제로 경험하고 겪어보라는 체험의 가치를 넌지시 권유했다.

경영자나 정치인에게 있어 말하기 능력은 필수다. 글쓰기도 참모에게만 맡기기보다 직접 써보는 체험의 기회를 늘려가야 한다. 남 앞에 서서하는 현장 연설을 앞두고 긴장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기회가 주어지면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체험해야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말하는 실력도 향상된. 지도자의 연설 실력에 따라 조직을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벼랑 끝에 몰린 장수가 감동적인 연설을 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승전보를 전한 사례가 많다.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 전투도 칼의 힘이 아닌 말의 힘으로 이긴 전쟁이었다.

경영자나 정치인들이 말하기나 글쓰기 말고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현장 체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도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보와 숫자 위주로 전달하던 연설 패턴도 바꿀 수 있다.

상투적인 표현만 반복하거나 경직된 상태에서 연설하던 습관도 달라진다. 우리 일반인들의 생활에서도 체험의 중요성을 굳이 강조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현장을 체험하는 발길이 잦을수록 ‘말길’도 트이고 글의 길도 활짝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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