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건설 경영권 인수 협상이 수개월째 제자리걸음하던 지난 9월 말.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큐캐피탈의 핵심 관계자는 두산그룹을 찾아가 이같이 말했다. 직접 두산건설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앞서 두산건설 인수 협상은 또 다른 PEF 운용사인 소시어스PE가 주도하다가 무산된 뒤 신영증권PE로 주도권이 바뀐 터였다. 이때만 해도 큐캐피탈은 두산건설 인수에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하려고 검토 중이었다.
협상 분위기 바꾼 큐캐피탈
큐캐피탈은 앞서 협상을 이끌었던 주요 투자자들과 비교할 때 자금력이 탄탄하고 신뢰도가 높아 거래 종결을 기대할 수 있는 파트너였다.큐캐피탈은 건설업 경기가 호황인 데다 두산건설의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추세인 만큼 ‘돈을 빌려주고 원리금을 받는’ FI로서 투자 매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협상에 진척이 없자 직접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당시 두산그룹은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 관리체제에서 연내 졸업하기 위해 핵심 과제인 두산건설 매각 협상에서 진전을 봐야 했다. 그룹 입장에서는 새로운 구원투수가 나타난 셈이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앵커 투자자가 큐캐피탈로 바뀐 뒤에도 거래 종결까지는 산 넘어 산이었다. 큐캐피탈이 새롭게 전면에 나서면서 신영증권PE는 FI로 참여 성격을 바꿨다. 큐캐피탈은 두산건설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정밀 실사를 거친 뒤 새로운 인수 구조를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건설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평가가격 수준)은 다소 낮아졌다. 두산그룹 관점에선 아쉬운 대목이지만 연내 거래 종결을 위해선 더 이상 협상을 미루기 어려웠다. 결국 양측은 10월 중순께 거래구조에 합의했다.
거래구조 합의라는 한고비를 넘긴 뒤에도 자금 모집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한 달여 기간을 잡아먹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를 감안해 주식매매계약(SPA) 날짜를 11월 19일로 못박았지만 약 600억원의 자금을 모으지 못했다. 계약 체결 시한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젝트 펀드 결성이 쉽게 이뤄질 리 없었다. 이때부터 큐캐피탈과 두산그룹은 합심해 두 팔 걷고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계약 반나절 앞두고 날아든 낭보
건설사 인수에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투자자가 없으니 거래 성사 여부도 계약 체결 시한 1주일 전까지 안갯속이었다.그러다 계약 체결 당일인 19일 오전에야 최종 투자자를 확정했다.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와 우리프라이빗에쿼티(PE)였다. 우리PE는 큐캐피탈과 공동으로 조성한 기업재무안정 블라인드 펀드를 활용했다. 스카이레이크는 두산그룹의 동박 계열사인 솔루스를 인수한 인연으로 이번 거래에 참여했다.
두산그룹의 마지막 구조조정 매물로 꼽힌 두산건설 인수합병(M&A)은 그렇게 극적으로 성사됐다. 큐캐피탈 컨소시엄은 지난 21일 최종적으로 거래를 마무리지었다. 두산그룹 관점에선 지난해 대우산업개발과 한 차례 협상이 무산된 지 1년3개월 만이자, 물밑에서 벌인 다른 두차례의 협상 무산이라는 아픔을 겪은 뒤였다. 현재 두산그룹은 남은 몇 가지 재무안정성 강화 조치만 진행하면 내년 초께 채권단 관리를 졸업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사모펀드가 두산건설을 앞으로 어떻게 키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사모펀드가 건설업체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큐캐피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건설업은 경영 전문성을 필요로 하고 투자 위험이 커 PE는 물론 FI도 꺼리는 투자 업종 중 하나다. 큐캐피탈이 국내 PE의 성공적인 건설사 투자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