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시아 크바데의 ‘Hemmungsloser Widerstand’
알리시아 크바데의 ‘Hemmungsloser Widerstand’
“이제 회화는 망했다. 누가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만들 수 있겠는가.” 1912년 항공공학박람회를 다녀온 프랑스의 현대미술 거장 마르셀 뒤샹(1887~1968)은 과학의 아름다움에 감동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과학은 세상을 이루는 아름다운 진리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일맥상통한다. 최신 과학 이론을 주제로 회화·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이어온 독일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42)의 심오한 작업들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이유다.

서울 청담동 쾨닉 서울과 한남동 페이스 서울에서 크바데의 근작 30여 점을 소개하는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폴란드 출신인 크바데는 최근 베를린 주립미술관과 노이스 랑겐파운데이션, 헬싱키 에스포 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촉망받는 작가다. 파리 퐁피두센터,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 상하이 유즈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201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에게 옥상정원에 놓일 조각작품을 주문해 설치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돌과 거울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구성하는 과정을 표현한 작품들이 나왔다. ‘DUODECUPLE BE-HIDE’는 전시장 중앙에 돌덩이 12개와 투명한 유리처럼 보이는 양면거울 10여 개를 배치해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형상이 나타나게 한 설치 작품이다. 사물을 보는 관점에 따라 그 본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표현한 작품으로, 물리학의 양자역학 이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물방울이 떨어져 파동을 만들어내는 광경을 분자 차원에서 묘사한 ‘ENTROPIE’는 과학의 엔트로피(무질서도) 개념을 주제로 했다. 시계침은 분자의 배열을 상징한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의자 모양의 설치작업 ‘Siege du Monde’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재치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청동으로 만든 무거운 의자 아래에 행성 모양의 붉은 색 바위를 고정했다. 작가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위치에 갇혀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