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퐁피두센터와 파크원
‘프랑스 3대 미술관’인 퐁피두센터의 개관을 앞둔 1977년 1월, 건물 설계자 리처드 로저스가 파리에서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옆에 있던 한 여성이 우산을 씌워주며 “퐁피두센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내가 설계자”라고 답했다. 그러자 여성이 우산으로 그의 머리를 후려치고 가버렸다.

퐁피두센터의 디자인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두터운 파이프에 둘러싸인 외관이 마치 내장을 드러낸 것처럼 보였으니 그럴 만했다. 고풍스러운 파리 시내에 도발적으로 들어선 이 건물은 매우 기이해서 “네스호의 괴물 같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로저스가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이 될 줄은 몰랐다. 하이테크 건축은 금속골조와 유리 등을 첨단기술과 접목한 것이다. 철골과 배관, 에스컬레이터를 밖으로 빼고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특징이다. 그는 퐁피두센터의 강철 뼈대와 유리의 차가운 느낌을 보완하기 위해 배수관은 초록색, 에스컬레이터는 빨간색으로 칠했다.

시장통 빈민가의 버려진 땅에 유럽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관이 들어선 것은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실용주의 정책 덕분이었다. 퐁피두는 “옛 예술품을 위한 루브르는 있으니 현대 예술을 이끌 새 미술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9개국 681개 응모작 중 신예 로저스 팀의 설계가 뽑힌 것도 디자인이 그만큼 현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로저스의 걸작은 세계 곳곳에 있다. 지난해 완공된 서울 여의도의 파크원도 그의 작품이다. 파크원은 53층과 69층 오피스빌딩 두 동, ‘더 현대’ 백화점 등으로 구성된 복합단지다. 높이 318m의 이 고층건물은 그가 맡은 단일 프로젝트 중 가장 크고 높다.

파크원 건물의 붉은색 테두리는 한국의 단청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또한 “본래 단청색과 다르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하긴 퐁피두센터 건축 때도 그랬다. 로저스는 신인으로서 당선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상상력과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어릴 때 난독증으로 고생하다 하이테크 건축의 신지평을 연 그는 “도시야말로 우리 문화와 문명의 심장이자 경제의 엔진”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독특한 건축철학이 깃든 파크원도 퐁피두센터만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될지 주목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