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명절 상여금도 통상임금 인정…'신의칙' 적용 기준 구체적 제시
1·2심 엇갈리며 9년간 소송…사측 손들어준 2심 파기 환송
'최대 6천억'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 노조 승소(종합2보)
정기 상여금과 명절 상여금을 통상임금 소급분에 포함해 지급해야 하는지를 놓고 현대중공업 노사가 9년 동안 벌인 소송전이 노동자들의 승소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 노동자 10명이 전체 3만여명을 대표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원고 승소 취지로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기업이 일시적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향후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2심에서 통상임금으로 인정이 안 됐던 명절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판단도 내렸다.

'최대 6천억'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 노조 승소(종합2보)
◇ '명절 상여금'과 '신의칙 위반'이 쟁점…1·2심 판단 엇갈려
이번 소송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법정수당과 퇴직금 등의 차액을 청구하면서 개시됐다.

현대중공업의 상여금은 2개월(짝수 달)마다 100%씩 총 600%에 연말 100%, 설·추석 명절 50%씩을 더해 모두 800%였다.

회사는 이 '800% 상여금'을 전 종업원과 퇴직자에게 일할 계산해 지급했지만 명절 상여금(100%)은 재직자에게만 지급했다.

노동자들은 상여금이 정기성(정기적인 지급), 일률성(일정한 조건을 만족한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 고정성(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했다면 업적·성과 등과 무관하게 당연히 지급) 등 통상임금의 성격에 들어맞는 만큼 800%에 해당하는 소급분을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난 2012년 소송을 냈다.

회사가 지급해야 할 4년 6개월(2009년 12월∼2014년 5월)치 통상임금 소급분의 총 규모는 4천억원(노조 추산)에서 6천억원대(사측 추산)로 추정됐다.

재판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관행상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되지는 않은 명절 상여금(100%)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는가와 노조의 청구대로 소급분을 지급하면 회사에 경영상 어려움이나 존립 위기가 찾아오지 않겠느냐다.

하급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명절 상여금을 포함한 성과급 800%를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소급분을 주면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사측의 '신의칙 위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2심은 명절 상여금이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만 지급돼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수 없고, 조선업 경기 악화 등 조건을 따져볼 때 소급분을 지급하면 회사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신의칙에 어긋난다고 봤다.

명절 상여금을 뺀 700%는 통상임금에 포함되나, 회사가 소급분을 지급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취지다.

'최대 6천억'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 노조 승소(종합2보)
◇ 대법 "관행 이유로 통상임금성 배척 말라"…신의칙 구체적 기준도 제시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정기 상여금 외에 명절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특정 시점이 되기 전 퇴직한 근로자에게 특정 임금 항목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있더라도,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이 관행과 다른 내용을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으면 관행을 이유로 해당 임금 항목의 통상임금성을 배척함에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명절 상여금이 관행적으로 퇴직자에게 지급되지 않았다며 사측이 내세우는 근거는 품의서, 지급안 등 회사 내부 자료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했다.

아울러 신의칙을 적용해 통상임금 소급분 지급 책임을 면해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도 내놨다.

대법원은 "국내·외 경제 상황의 변동과 불이익은 오랫동안 대규모 사업을 영위해 온 기업이 예견할 수 있거나 부담해야 할 범위 내에 있고 극복 가능성이 있는 일시적 어려움"이라면서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으로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초래된다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소송과 동시에 진행된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사건도 유사한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현대미포조선의 868억원 규모 통상임금 소송도 1심은 원고 승소, 2심은 원고 패소 판단이 나왔고, 항소심에서 신의칙이 적용됐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을 위반한 것인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사정과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당사의 입장과 차이가 있다"며 "판결문을 받으면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대 6천억'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 노조 승소(종합2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