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스럽기 짝이 없어"…저항시인 이육사 친필편지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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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이육사 시인 관련 기록물 7건 온라인 공개
친구에게 보낸 편지·검찰기록 등…독립운동중 가난한 생활 엿보여
저항시인 이육사(1904~1944)의 친필 한문 편지가 국가기록원에 의해 복원됐다.
독립운동 중 가난했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편지로, 자료를 소장한 이육사문학관(경북 안동시 소재)은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친척에게 보낸 한문편지 등 이육사 시인과 관련한 7건 341장의 기록을 복원해 온라인(www.archives.go.kr)으로 공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육사가 친척 이상하에게 보낸 한문편지는 일부가 훼손돼 정밀 작업을 거쳐 복원된 것이다.
편지에는 "형제가 서로 의지하며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만, 보잘것없어서 아침에는 끼닛거리가 없고 저녁이면 잠잘 곳이 마땅하지 않으니 한탄스럽기 짝이 없을 뿐입니다"(한글 번역)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편지를 쓴 1930년은 26살이던 이육사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이듬해다.
그해는 아들(만 2세 사망)이 태어난 뒤 중외일보의 대구기자로 일했던 때다.
대구청년동맹 간부로서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편지에는 '백(白) 아무개가 관련된 일은 백방으로 알선하고 있는데(중략) 비록 몇사람의 반대가 있더라도 마땅히 극력 무마하여 탄탄대로에 이르도록 할 것이니 근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는 내용도 있다.
'극력 무마'하겠다는 일이 독립운동과 관련돼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육사는 '청포도', '절정, '광야' 등의 시로 알려진 저항시인으로, 일제 강점기 중국을 오가며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본명은 원록으로, 이육사라는 이름은 그가 옥고를 치르던 당시 수인번호(264)이기도 하다.
국가기록원은 이육사가 조선은행 폭파사건에 연루돼 체포됐을 당시 처분 결과를 기록한 '집행원부'도 공개했다.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이 경찰에서 접수한 피의자들의 처분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본명 이원록으로 기록돼 있다.
죄목은 '폭발물 취체(통제)규칙',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치안유지법 위반', '협박과 살인미수'라고 적혀있다.
이육사 외에도 이원일, 조우제, 마현석 등 독립운동가들의 보석, 출감 일자도 기록돼 있다.
공개된 자료에는 친척 이원봉에게 보낸 엽서(1931년 11월10일), 문우였던 신석초에게 보낸 엽서도 있다.
신석초에 보낸 엽서 중에는 "명사 오십리에 동해의 잔물결이 두 사람의 걸어간 자취조차 씻어버리지 못하고 보드랍게 할터('핥아'의 사투리 추정) 갑니다"라는 문학적 표현이 눈에 띈다.
손병희 이육사문학관 관장은 "미공개 일제시대 집행원부와 이육사의 한문편지 내용을 확인한 것은 소중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친구에게 보낸 편지·검찰기록 등…독립운동중 가난한 생활 엿보여
저항시인 이육사(1904~1944)의 친필 한문 편지가 국가기록원에 의해 복원됐다.
독립운동 중 가난했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편지로, 자료를 소장한 이육사문학관(경북 안동시 소재)은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친척에게 보낸 한문편지 등 이육사 시인과 관련한 7건 341장의 기록을 복원해 온라인(www.archives.go.kr)으로 공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육사가 친척 이상하에게 보낸 한문편지는 일부가 훼손돼 정밀 작업을 거쳐 복원된 것이다.
편지에는 "형제가 서로 의지하며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만, 보잘것없어서 아침에는 끼닛거리가 없고 저녁이면 잠잘 곳이 마땅하지 않으니 한탄스럽기 짝이 없을 뿐입니다"(한글 번역)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해는 아들(만 2세 사망)이 태어난 뒤 중외일보의 대구기자로 일했던 때다.
대구청년동맹 간부로서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편지에는 '백(白) 아무개가 관련된 일은 백방으로 알선하고 있는데(중략) 비록 몇사람의 반대가 있더라도 마땅히 극력 무마하여 탄탄대로에 이르도록 할 것이니 근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는 내용도 있다.
'극력 무마'하겠다는 일이 독립운동과 관련돼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육사는 '청포도', '절정, '광야' 등의 시로 알려진 저항시인으로, 일제 강점기 중국을 오가며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본명은 원록으로, 이육사라는 이름은 그가 옥고를 치르던 당시 수인번호(264)이기도 하다.
국가기록원은 이육사가 조선은행 폭파사건에 연루돼 체포됐을 당시 처분 결과를 기록한 '집행원부'도 공개했다.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이 경찰에서 접수한 피의자들의 처분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본명 이원록으로 기록돼 있다.
죄목은 '폭발물 취체(통제)규칙',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치안유지법 위반', '협박과 살인미수'라고 적혀있다.
이육사 외에도 이원일, 조우제, 마현석 등 독립운동가들의 보석, 출감 일자도 기록돼 있다.
공개된 자료에는 친척 이원봉에게 보낸 엽서(1931년 11월10일), 문우였던 신석초에게 보낸 엽서도 있다.
신석초에 보낸 엽서 중에는 "명사 오십리에 동해의 잔물결이 두 사람의 걸어간 자취조차 씻어버리지 못하고 보드랍게 할터('핥아'의 사투리 추정) 갑니다"라는 문학적 표현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