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돌아온 프라하의 연인들 ① 백탑의 도시를 거닐다
구름 한 줄기가 하늘에 길게 흩어진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어느새 시선은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쫓는다.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
기억에서조차 가물거리던 해외여행…. 팬데믹의 습격은 일상은 물론 훌훌 떠날 자유마저 앗아갔다.

'위드 코로나'에 즈음해 백신접종 증명서를 들고 격리 없이 다닐 수 있는 여행지로 떠났다.

노을이 분홍빛으로 엷게 물든 날, 650여 년간 프라하와 함께 한 카를교에 섰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4세가 세운 다리다.

[imazine] 돌아온 프라하의 연인들 ① 백탑의 도시를 거닐다
◇ '예술의 도시' 프라하, 웃음과 활기를 되찾다

고딕에서 바로크, 로코코를 거쳐 아르누보, 큐비즘까지.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프라하의 다채로운 예술 속으로 빠져든 여행객들의 표정이 밝다.

유구한 세월 프라하를 묵묵히 지켜봐 온 석상들이 사람들의 얼굴에 다시 찾아온 웃음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 듯하다.

이제는 여행의 즐거움을 되찾을 때다.

[imazine] 돌아온 프라하의 연인들 ① 백탑의 도시를 거닐다
◇ 독립기념일 연휴 맞아 카를교는 인산인해

블타바강의 레기다리에서 카를교까지 구간인 스메타나 강변을 따라,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 보고 떠들썩하다.

마스크를 쓴 이는 드물다.

연인들은 서로 속삭이고, 무리 지은 친구들은 큰 소리로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카를교 입구에 도착하니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가 힘들 정도다.

관광 가이드는 "체코의 독립기념일 연휴라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프라하에 도착한 첫날 저녁 서둘러 카를교를 찾았을 땐 다리에 세운 조각상들만큼이나 사람이 적었다.

그때 든 생각은 '마법의 도시 프라하도 코로나를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였다.

처음엔 그냥 '돌다리'나 '프라하 다리'로 불렸다.

'카를의 다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약 500년이 지난 뒤다.

1357년 카를 4세가 착공했고, 1402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와 성 도미니크 아퀴나스 석상, 십자가와 갈보리 석상 등 30개에 달하는 바로크 양식 석상들은 1683년부터 1928년 사이에 세워졌다.

아쉽게도 현재는 모두 복제품이다.

이들 석상의 원본은 라피다리움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집시들이 올빼미와 흰 비둘기를 여행객들 머리 위에 올려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흥미로운 광경도 눈에 띈다.

'아! 관광지구나'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구시가지 교탑 입구에서부터 건너편 말라 스트라나 교탑까지 걷고 나서 돌아서니, '유럽 건축의 도시, 백탑의 프라하'라는 별명에 걸맞게 고딕, 로마네스크,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과 성당 탑들이 눈을 한가득 채운다.

다양한 석상들과 프라하성. 함께 나온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 난간에 기대어 블타바강을 구경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화가들. 흥겨운 버스킹 공연을 즐기는 인파….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가톨릭 성인으로 알려진 '성 얀 네포무크' 석상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이들로 카를교는 이날 붐볐다.

[imazine] 돌아온 프라하의 연인들 ① 백탑의 도시를 거닐다
다음 날 일출 시각에 맞춰 카를교를 다시 찾았을 땐 짙은 안개 덩어리가 서서히 다리를 점령해왔다.

검은 하늘과 뾰족이 솟은 고딕 첨탑들 바로 위로 아침노을이 잠깐 붉게 물들 때 카를교에서 하루의 시작을 맞는 여행자들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 지금 아주 멋진 곳에 와 있다고!"

◇ 14~20세기까지 유럽 건축의 박람회장으로 타임슬립
[imazine] 돌아온 프라하의 연인들 ① 백탑의 도시를 거닐다
구시가지 광장 프라하 천문시계탑 앞도 사람들로 붐볐다.

매시 정각에만 모습을 보여준다는 십이사도 목각상들을 구경하는 여행자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작동하는 천문시계 안내서'를 읽어 보니, 당시 대부분 천문시계가 교회 내부장식을 위해 제작됐지만, 15세기 초반에 프라하 천문시계는 구시청 건물 외벽에 설치됐다고 한다.

이 시계를 한때 '유럽의 심장'이라 불렸던 프라하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접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사람들이 광장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위치에 설치했다는 뒷얘기가 전해온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자리한 옛 시청 전망대는 중세와 근대 유럽 건축물들의 박람회장으로 관광객들을 데려간다.

[imazine] 돌아온 프라하의 연인들 ① 백탑의 도시를 거닐다
광장 맞은편으로 '틴 성모 마리아 성당'이 높이 80m에 달하는 탑 두 개와 함께 솟아 있다.

고딕양식으로 14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초 사이에 건축됐다.

왼쪽으로 벽면 창들 장식이 예쁜 로코코 양식의 골츠킨스키 궁전이 보인다.

현재는 프라하 국립미술관 건물로 사용 중이다.

화려한 아르누보 장식의 멋진 건물은 뭘까.

얼른 구글 지도를 켜보니 체코 정부 부처인 '지역개발본부'로 적혀 있다.

전에는 소방서 본부였다고 한다.

지붕 처마 사진을 확대해 보니 소방호스를 든 소방관 조각상이 있다.

사전 지식이 없다면 미술관과 정부 부처 건물을 착각할 정도로 외양이 화려하다.

[imazine] 돌아온 프라하의 연인들 ① 백탑의 도시를 거닐다
바로크 양식의 후스파 교회인 성 미쿨라셰 성당도 800년 동안이나 이곳에 있었다.

모차르트가 4천 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오르간을 연주했다는 동명(同名)의 성당은 카를교 건너 말라 스트라나에 있으니 혼돈하지 말자. 흐라드차니 방향으로는 프라하성과 한눈에 고딕 양식을 알아볼 수 있는 비투스 성당의 탑들, 프라하 시내의 주황색 지붕들이 보인다.

광장 가운데에는 체코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과 프라하의 마리아 기둥이 있다.

체코 출신이지만 독일어로 작품을 쓴 대문호 프란츠 카프카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도 빼놓지 말고 보자. 외벽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장식이 있다.

◇ 언덕에 올라 프라하를 내려다보니…
[imazine] 돌아온 프라하의 연인들 ① 백탑의 도시를 거닐다
언덕 위에 자리한 프라하성과 흐라드차니 광장에서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봤다.

블타바강과 카를교, 구시가지 성당과 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프라하성 근위병의 교대식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광장 주변으로는 1562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세워져 18세기에 로코코 양식을 더한 프라하 대주교궁이 있다.

맞은 편으로는 벽면에 석회를 바르고 긁어내서 장식하는 즈그라피토 기법을 사용한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이 서 있다.

현재는 미술관으로 쓰인다.

10여 분 정도 더 언덕을 오르면 스트라호프 수도원을 만난다.

여기에서는 프라하 성채와 성 비투스 성당, 프라하 시내를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다.

모두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 다시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기대하며
[imazine] 돌아온 프라하의 연인들 ① 백탑의 도시를 거닐다
팬데믹으로 여행객들이 줄면서 체코 안에 한국인 관광가이드는 몇 남지 않았다.

팬데믹 이전에는 체코를 찾은 한국인 여행객이 연간 최대 42만여 명에 달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만난 한국인은 다섯 명도 채 안 됐다.

유럽에서 19년, 체코에서만 13년째 산다는 이영애 씨는 가이드 일거리가 뜸해지면서 지금은 프라하 시내 매니페스토 마켓에 입점한 한국음식점에서 일한다.

매니페스토에서는 세계 각국 음식들과 체코 음식, 맥주를 함께 골라 맛볼 수 있다.

이 씨는 "프라하는 로맨스에 빠지고 싶어 오는 도시, 아기자기하면서도 유럽 어느 도시보다 너무 예쁜 도시"라고 말했다.

프라하를 떠나기 전날 늦은 밤. 스메타나 강변 골목 안 '헤밍웨이바' 앞에서는 젊은이들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띈다.

팬데믹이 앗아갔던 '밤의 자유'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광경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