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학생인권조례본부, 150개 중·고교 생활규정 전수조사 결과 발표
"여학생 바지 입으려면 교장이 허락해야" 시대착오적 학생규정들
"(여학생이) 부득이하게 바지를 착용해야 할 경우 담임이나 의사 소견서를 학생안전부에 제출해 학교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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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대전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지역 시민단체와 학부모, 교사 등이 시내 150개 중·고등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처럼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서대전여고의 '학생 복장 및 용의 규정 제2조'는 바지를 입는데 의사 소견서까지 첨부하도록 하는 등 대전지역 중·고교의 28%가 여학생의 바지 구매와 착용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었다.

대전외고는 여학생의 스타킹은 살구색·회색·검은색으로 제한하고 있고, 신일여고는 '피부색, 회색, 검은색을 위주로 현란한 색깔과 무늬를 삼간다'고 명시하는 등 성차별적인 규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학교의 52.3%, 고등학교는 공립과 사립의 각각 67.6%·53.6%가 이성 교제를 규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대전가오고는 '불건전한 이성 교제로 풍기 문란하게 한' 학생에 대해 퇴학 처분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으며, 대전과학고는 남녀 학생 간 만남은 항상 개방된 장소를 이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전체 중·고교의 86.7%가 두발 길이를 제한하거나 파마·염색 등 두발 변형을 제한하는 등 두발 규제 조항을 갖고 있었다.

반면 학생의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학교는 중학교의 경우 3.4%, 고등학교는 사립 3.6%, 공립 17.6%에 불과했다.

"여학생 바지 입으려면 교장이 허락해야" 시대착오적 학생규정들
서대전여고의 경우 '징계 학생의 명단을 필요에 따라 게시물을 이용해 전교생에게 공고함으로써 예방하도록 한다'는 규정을 두는 등 개인 정보를 침해한 사례도 있었다.

학생에 대한 체벌 금지가 전면 시행되고 있지만, 대전대신고는 '체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해 교육의 방법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불법적인 조항도 두고 있었다.

시내 학교의 86.7%가 체벌을 대신해 학생 지도의 방법으로 '상벌점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교사와 학생 간 주관적인 감정에 의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과하게 제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대전대화중의 경우 친구를 다치게 하는 경우는 벌점 3점, 교직원에게 욕설하거나 불손한 행동을 한 경우 벌점 40점을 매기도록 했다.

대전이문고도 교사 비하 발언, 교사에게 버릇없는 행동을 하거나 말로 대드는 행위에 대한 금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이밖에 학생생활규정에 '성행이 불량한'·'불건전한 출판물'·'불미스러운'·'불손한'·'학생답지 못한' 등 기준이 모호한 불명확한 표현을 사용한 학교가 무려 72.7%에 달했다.

정은정 대전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은 "버릇없는 행동의 수위는 교사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고 당시의 감정 상태에 따라 변할 수 있어 기준이 객관적이지 못하다"며 "경기도교육청과 경남도교육청도 각각 2014년과 2018년 상벌점제를 폐지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벌점제의 교육적 효과가 없다는 연구 보고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불공정성과 교사와 학생 간 불신 초래 등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만큼 즉시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