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채용 때 기존 병력 체크 등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 채용 문화까지 바꾸고 있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하성욱 KMI한국의학연구소 전략기획실 이사의 말이다.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업종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상당수 기업이 채용 건강검진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뇌·심혈관계 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도 중대재해법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내면서 기업들은 초긴장 상태다. 이전엔 만성 질환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여겼기에 기업들로선 충격이다.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채용 때 건강검진 엄격해져

국내 대형 유통업체 A사는 올 하반기부터 배송기사 채용 과정에 변화를 줬다. 이전까지는 간단한 면접 후 운전 습관을 관찰하는 유급 운전 연수 기간을 둔 뒤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채용해왔다. 하지만 최근엔 운전 연수를 통과한 지원자 전원에게 지정 병원 신체검사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또 심혈관계 질환과 관련한 특정 ‘질병 코드’가 나오면 채용하지 않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증, 뇌졸중 등이 의심되면 뽑지 않겠다는 얘기다. 코로나19로 물량이 늘어 기사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중대재해법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기저질환자가 만에 하나 잘못되면 최고경영자(CEO)가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상황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외국계 대형 유통업체 B사도 마찬가지다. 제조업체가 아니라 산재 발생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신검 결과 ‘재검’이 나오면 채용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른 새벽 출근하거나 직원 혼자 무거운 물건을 운반할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기업 인사담당자는 “예전에는 큰 이상이 없다면 재검을 거쳐 채용하는 수순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며 “근로인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CEO가 구속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인 CEO가 처벌받으면 귀국을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고 전했다.

국내 대기업 C사는 직업병 소견이 있는 사람은 채용에서 배제한다는 지침을 마련하고 건강검진 결과 검수 절차를 강화했다. 채용 전에 시행하는 특수건강검진이자 업무적합성 평가인 ‘배치 전 검사’를 하면서 개별 전문의의 소견을 받아야 하는데, 하반기부터는 해당 소견을 전문가에게 의뢰해 전수 재검토하는 등 절차를 이중삼중 강화했다.

의료계는 이전까지는 채용 건강검진이 사실상 ‘요식 절차’에 그쳤지만 이제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KMI한국의학연구소의 연간 채용 건강검진은 2019년 6만971건, 2020년 5만6636건이었지만 중대재해법이 윤곽을 드러낸 올해는 11월 기준으로도 7만4294건에 달했다.

법적 분쟁 우려 커져

A사에선 운전연수 이후 합격 통보를 받은 경력직 지원자가 신체검사 합격 이후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자 부당하다고 나서는 일이 발생했다. 자신은 채용 내정자며 이미 합격한 뒤 발령 대기 중이어서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기업들은 근로자 건강을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면 제재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장애인이 아닌 한 근로기준법이나 채용절차공정화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법에선 건강상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별다른 제재 규정은 없지만 인권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기업들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건강을 이유로 한 채용 거부가 음성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인사 담당자들의 전언이다. 기업이 불합격 통보를 하면서 사유를 밝히는 경우는 드물어 이 문제가 외부로 드러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물론 산재로 인한 기업 불이익이 크다 보니 아예 채용단계에서 위험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곽용희/백승현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