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26일 학술회의
'우리 안의 파시즘' 출간 20년…한국 사회는 나아졌는가
1997년 창간된 계간지 '당대비평'은 1999년 가을호와 겨울호에서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파격적인 주제를 다뤘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한국 사회가 형식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뤘지만, 사람들의 의식 깊은 곳에는 내면화된 규율 권력이 강고히 자리 잡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된 기획이었다.

연구자들은 파시즘에 대항했다고 알려진 진보 세력 안에도 폭력적 양태가 존재한다고 주장해 학계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우리 안의 파시즘'은 2000년 단행본으로 나왔고 2016년 제2판이 출간됐다.

당시 주요 필자로 참여한 임지현 서강대 교수가 이끄는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는 같은 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함께 26일 '우리 안의 파시즘 2.0'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고 17일 밝혔다.

서강대 정하상관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의 세부 주제는 '공공인문학, 한국 사회의 길을 묻다'이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가 사회를 맡고, 연구자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발표한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는 발표 요약문에서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능력주의'를 비판했다.

이 교수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보다는 부모의 상속과 증여가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이제 '허구'"라며 "능력주의는 공정사회라는 유토피아로 이르는 길이기도 하고, 동시에 능력의 폭정이라는 디스토피아로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출신 계급과 같은 '비능력적 요소'를 약화하고, 개인의 '능력적 요소'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정치는 차이를 좁히고 갈등을 완화하고 대립과 적대를 공존과 조정으로 이끄는 '반성적 균형'을 필요로 한다"며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정치의 부재' 혹은 '정치의 부작동'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사회학자인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이른바 386세대 지식인 네트워크와 노동조합의 '전투적 조합주의'와 '연공제(年功制) 고수 전략'이 노동시장 불평등의 주요한 원인이 됐다고 지목했다.

조영한 한국외대 교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종주의'를 고찰해 "한국 사회의 일상적 인종주의는 근대 이후 사회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자신을 낮춰본 열등감과 최근의 변화 속에서 느끼는 우월감의 합작품"이라고 분석했다.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관계자는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향한 우리의 배는 좌우 합작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우리 안의 파시즘' 앞에서 좌초할 위험에 처해 있다"며 "'우리 안의 파시즘'을 제기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우리 안의 파시즘 2.0'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