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춧잎 마르는 '갈색줄무늬병' 춘천에 창궐…150㏊ 중 90% 감염
상품성 잃은 배추 절반가량 밭에 버려…병해 심한 농가는 출하 포기
[르포] "하늘이 야속해" 김장철 앞두고 밭에 배추 버리는 농민들
강원 내륙의 가을배추 주산지인 춘천시 서면 신매리 일대의 드넓은 배추밭은 김장철을 앞둔 농민들이 작물을 수확하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망에 넣는 배추보다 밭에 버리는 것이 더 많았다.

버려진 배추는 땡볕에 탄 듯 겉잎이 갈색으로 말라 있었다.

배추 세균병의 일종인 '갈색줄무늬병'에 감염된 것이다.

서면 곳곳을 돌아다녀 봐도 짙은 초록의 건강한 배추를 찾기 힘들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밭이 갈색으로 변했다.

수확을 마친 밭도 텅 비지 않고 배추 절반 정도가 버려져 있었다.

[르포] "하늘이 야속해" 김장철 앞두고 밭에 배추 버리는 농민들
4일 서춘천농협에 따르면 서면 지역 배추밭 150㏊ 중 135㏊(90%)에 병해가 발생했고 75㏊(50%)가 심각한 상황으로 집계했다.

농민들은 탄식을 넘어 참담함을 토로했다.

서면에서 4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는 정의화(75)씨는 "평생 배추 키우면서 이렇게 심한 피해는 처음"이라며 "추석 무렵 배추에서 갈색 반점이 생기더니 걷잡을 수 없이 사방으로 번졌다"고 말했다.

인근 밭에서 수확 작업을 하던 정옥균(69)씨도 "상한 겉잎을 떼어 내면 배추가 볼품없이 작아진다"며 "도매시장에서 제값을 받을지 걱정이고, 절반은 그냥 밭에 내다 버렸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웃 농가는 병이 너무 심해 출하 작업을 포기했다"며 "그저 하늘이 야속할 뿐"이라고 말했다.

[르포] "하늘이 야속해" 김장철 앞두고 밭에 배추 버리는 농민들
서면 지역에는 주로 뿌리혹병이 발생해 배추가 주저앉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농민들이 올해 이 병에 강한 것으로 알려진 '조추만추' 품종을 밭에 심었다.

하지만 해당 품종이 갈색줄무늬병에 약한 것 같다고 농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올가을에는 장마를 방불케 하는 많은 비가 내렸고 기온도 평년보다 3도가량 올라 '고온다습' 환경에서 병해가 번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과 방제 방법을 일러주는 이는 없었다.

김장철을 맞아 흐뭇한 수확을 올려야 할 농민들은 애써 기른 배추 대부분을 트랙터로 갈아엎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수확한 배추를 운반하는 대형트럭 운전기사는 "도매시장에 가봐야 알겠지만, 이 지역 배추가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대형 트럭 한가득 실려야 할 배추는 그 양을 다 채우지 못하고 흙먼지와 함께 동네를 빠져나갔다.

[르포] "하늘이 야속해" 김장철 앞두고 밭에 배추 버리는 농민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