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다양성 가치의 산실
[여기 어때] '작은 지구' 서천 생태원
'너와 나의 다름'이란 완벽하지 못하다는 자성의 대상이 아니라, 그로부터 삶의 새로움이 잉태되는 원동력이다.

(생태학자 최재천의 '다윈 2.0' 중에서)

◇ 날지 않는 독수리
전기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큰 독수리가 풀밭 가운데 서 있었다.

조각상을 잘못 보았나 생각했으나 살아 있는 독수리였다.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고 있었다.

몸매가 날렵하고 황금빛 털의 윤기가 반들반들한 담비는 덫에 입이 걸린 뒤 구조돼 치료받았으나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울타리 쳐진 마당에서 뛰놀고 있었다.

[여기 어때] '작은 지구' 서천 생태원
애완용으로 밀수돼 폐기 처분될 뻔했던 사막여우는 에코리움 사막관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충남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의 동물살이는 생명의 고귀함을 엿보게 한다.

[여기 어때] '작은 지구' 서천 생태원
날지 못하는 독수리는 생태원이 주는 먹이에 의지해 살지만, 위엄은 여전했다.

다른 독수리들이 날아와 먹이를 나눠 먹기도 한다.

담비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담비는 생태원 내 동북아 산림동물 보호시설에 있는 단 하나의 동물이다.

보호시설이 이 담비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여기 어때] '작은 지구' 서천 생태원
현존하는 여우 중 가장 몸집이 작은 사막여우는 먼 곳의 소리를 듣기 위해 큰 귀를 가졌다.

만화영화 캐릭터를 떠올리는 귀여운 사막여우는 인간들의 밀수로 생존을 위협받는다.

사막여우들은 2014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밀수된 것이 적발돼 압수된 뒤 생태원으로 옮겨졌다.

사막여우 전시는 밀수가 동식물 멸종위기의 주요 원인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사막관 전시 식물의 절반 정도가 국제 거래를 규제하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교역에 관한 협약'(CITES) 등록 종이다.

생태원에는 CITES 동물 보호시설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동물 찻길 사고 200만 건
생명의 소중함을 절감케 하는 장소는 또 있다.

담비 옆집 울타리 안에는 산양, 노루, 고라니 몇 마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울타리에 동물 찻길 사고, 이른바 '로드킬'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푯말들이 붙어 있었다.

연간 동물 찻길 사고는 포유류 60만, 양서류 54만, 조류 45만, 파충류 32만 건 등 200만 건에 이른다.

1분에 4마리가 희생된다.

2013년 1월부터 2018년 8월까지 고속도로 로드킬을 집계한 결과, 고라니가 1만752마리로 가장 많았다.

고라니는 자동차 불빛에 눈이 멀어 도망가지 못하고 자동차와 부딪힌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삵은 연간 1만∼2만 마리가 로드킬을 당한다.

도시나 고속도로보다는 산과 하천 옆 일반국도에서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너구리는 위협을 느끼면 도망가지 않고 죽은 척해서 사고를 당하고, 꿩은 도로 주변의 덤불과 덤불 사이를 낮게 날아가다 차에 부딪힌다.

직박구리는 도로 위에서 죽은 동물을 먹으려다 2차 사고를 당한다.

로드킬은 동물의 멸종을 위협하는 중대 요인이다.

로드킬 예방 조치가 여럿 있겠으나, 규정 속도만 지켜도 동물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하니 천천히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생태원에는 식물원과 동물원이 따로 없다.

식물과 동물이 어우러져 산다.

그래서 생태는 더 풍요로워 보였다.

국립생태원은 2013년 개관했다.

전국에 수목원, 식물원, 동물원 등이 꽤 있지만, 국가가 설립한 생태 전문기관이 선보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늦깎이 생태원 출범은 경제 성장 우선 문화 속에서 결코 선도적이지 않았던 우리의 생태 의식을 보여주는 듯싶다.

[여기 어때] '작은 지구' 서천 생태원
생태원은 동식물 전시만 하는 곳이 아니다.

자연을 만나고 배우는 장소이자, 생태 다양성의 가치를 퍼뜨리는 곳이다.

생태 조사 연구·평가, 생태교육 프로그램 개발·운영,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호시설 설치·운영,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증식·복원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약 100만㎡에 이르는 부지에는 전시관보다 채집, 재배, 실험 등을 위한, 눈에 잘 띄지 않은 시설이 더 많다.

생태원을 찾았다가 에코리움 전시만 보고 돌아간다면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실내뿐 아니라 야외를 돌면서 생동하는 생태의 다양성으로 가슴을 가득 채워야 모처럼의 여행과 외출의 뿌듯함을 누릴 수 있다.

실외에는 습지생태원, 한반도숲, 암석생태원, 고대륙구역, 나저어구역, 용화실못, 금구리못, 생태학자의 길 등 다채로운 공간이 있다.

◇ 또 하나의 작은 지구
생태원은 작은 지구라고 불린다.

한국의 숲과 습지뿐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생태계를 기후대별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동식물 5천300여 종이 산다.

생태원의 랜드마크 격인 에코리움은 거대한 실내 전시공간이다.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지구의 대표 기후대별로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다.

에코리움에는 식물 1천400여 종, 동물 260여 종이 2만1천㎡가 넘는 공간에 전시돼 있다.

높은 습도와 기온이 후끈하게 느껴지는 열대관에 들어서면 세계 최대 담수어인 피라루크가 제일 먼저 손님을 맞는다.

피라루크는 몸길이 5m, 몸무게 200㎏까지 자란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신기함을 더하는 동식물은 한둘이 아니다.

[여기 어때] '작은 지구' 서천 생태원
커튼담쟁이라고 불리는 식물인 치서스는 뿌리가 커튼처럼 공중에 드리워져 있다.

비가 많은 열대우림에서는 뿌리가 땅속에서 숨쉬기 어려워 공중으로 자라기도 한다.

사막관은 덥지 않았다.

사막은 온도가 아니라 강수량에 따라 규정되는 지형이기 때문에 덥지 않은 사막도 있다.

남극에 있는, 200만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하얀 사막'이라고 불리는 곳이 대표적이다.

울음소리가 개와 비슷한 프레리도그는 다람쥣과의 작은 포유류다.

맹금류가 나타나면 큰 소리로 울어 동족이 피할 수 있게 신호한다고 한다.

집단을 위한 자기희생처럼 보이는 행동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자신의 것과 비슷한 유전자를 가급적 많이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설을 떠올리게 하는 동물이다.

지중해성 지역은 지구 육지 면적의 1.7%에 불과하지만, 세계 식물 종의 25%가 자라는 등 생물이 다양하다.

온대에 속하는 지중해성 지역의 생태는 한반도 온대림과 비교하기 좋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의 기후 환경과 생태계를 재현한 온대관에는 제주도의 곶자왈 지형과 연못이 조성돼 있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뜻하는 '자왈'이 합쳐진 제주 방언이다.

곶자왈에는 열대성 북방한계식물과 한대성 남방한계식물이 혼재한다.

제주도는 한국 고유 식물 1천800여 종이 자라는, 세계적 생태 보고다.

극지관은 온대 지역 끝에서 극지방에 도달하기까지 생태계 변화를 재현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개마고원 생태를 시작으로 북극 빙설기후, 남극 펭귄 마을 등 극지를 체험할 수 있다.

남극 펭귄인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만날 수 있다.

◇ 생태 다양성의 가치에 흠뻑 젖는 야외
전시관 관람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리와 허리도 아프고,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소화하는 게 버겁기도 하다.

에코리움에서 지식 체증에 걸렸다면 야외를 거닐며 다양한 생태가 주는 기쁨에 마음을 놓아 주어야 한다.

[여기 어때] '작은 지구' 서천 생태원
생태원에서 가장 큰 연못인 용화실못은 큰고니, 흰뺨검둥오리, 원앙, 청둥오리, 쇠오리 등 멸종위기 동물과 철새의 서식지다.

큰 연못을 바라보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힐링 된다.

암석생물원에서는 장항선 철도와 장항역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장항역에서 5분만 걸으면 도착한다고 하니 생태원은 차 없이도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습지생태원에서는 샘통습지, 묵논습지, 람사르습지, 하천 배후습지 등 한반도 대표 습지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한국의 산림식생을 기후대별로 재현한 한반도숲은 말만 들어도 애정이 간다.

난온대식물인 동백나무, 온대식물인 굴참나무, 냉온대의 잣나무, 아한대의 전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다.

[여기 어때] '작은 지구' 서천 생태원
간과하기 쉽지만 놓치면 아까운 곳이 산들길, 바람길, 소로우길, 제인구달길, 찰스다윈길, 그랜트 부부길 등 산책로다.

숲속을 오르내리는 이 산책로들이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생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학문, 사상, 기술, 문화, 사회 조직 등 현대 문명의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 다윈의 진화론을 곱씹다 보면 생태와 환경에 관해 전환적 의식 변화가 생기고 인류 역사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하게 될지 모른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생물학자인 제인 구달과 그랜드 부부는 생태원을 직접 방문했던 석학들이다.

데이빗 소로우는 최초의 녹색 서적·환경 서적으로 평가받는 '월든'의 저자다.

[여기 어때] '작은 지구' 서천 생태원
생물 다양성의 세례는 생태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천 해안에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들어서 있고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된 송림마을 솔바람 숲도 있다.

서천이 간직한 생태관광 매력은 쉬이 끝날 줄 모른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