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계와 기관투자가가 보유한 해외 주식·펀드 투자잔액이 작년보다 2배 늘면서 600조원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저 수준인 시장금리로 원화를 빌려 미국 주식을 사들이는 이른바 '원 캐리 트레이드'가 불어난 데다 미국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간 영향이다. 서학개미가 '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금리가 제로 수준인 일본의 엔화를 빌려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인)'에 필적할 만큼 해외 자산을 불려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19일 발표한 ‘2021년 2분기 말 국제투자대조표’를 보면 개인·기관이 보유한 해외 주식·펀드 등 지분증권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5454억달러(636조9700억원·평가액 기준)로 집계됐다. 작년 6월 말에 비해 50%가량 늘었다.

해외 지분증권 잔액이 급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증권사들이 해외 직접투자 서비스를 개선한 데다, 개인과 기관이 투자처를 다변화하면서 사들인 주식이 크게 불었다. 이 금액이 올 2분기에만 136억달러에 달했다. 두 번째는 미국 나스닥 등이 고공행진하면서 평가차익이 318억달러를 기록했다. 나스닥지수가 작년 4분기 15.4%, 올 1분기 2.8%, 2분기 9.5%로 상승을 이어간 영향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작년 6월 말~올해 6월 말 국내 투자자의 순매수 1위 해외주식은 미국 테슬라로 42억4642만달러에 달했다. 그 뒤를 애플(22억9720만달러) 아마존(5억3089만달러) 팔런티어(5억3012만달러) TSMC(5억1495만달러)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인베스코 트러스트 QQQ(INVSC QQQ S1)'(4억7803만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5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낮춘 이후 시장금리가 줄줄이 사상 최저치로 내려갔다. 원화 차입비용이 줄면서 고금리·고수익을 좇아 해외투자가 대폭 늘었다. 이른바 '원캐리 트레이드'가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캐리 트레이드에 나선 서학개미가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 유럽의 ‘소피아 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불어나는 서학개미가 한국의 탄탄한 ‘외화 안전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달러를 비롯한 외화 빚을 상환할 자산이 그만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면 해외 주식 등 대외자산을 팔고 원화로 환전하려는 한국 기관·가계의 수요가 커지는 만큼 환율 등 금융시장 변동성도 줄여줄 것이라는 기대도 상당하다.

한편 만기가 1년 이하인 단기외채를 외환보유액으로 나눈 값인 단기외채비율은 39.2%로 3월 말에 비해 2.1%포인트 상승했다. 2012년 9월 말(41.6%) 이후 8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외채무 증가에도 우리나라의 외채 건전성은 양호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