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까지 뛰겠다는 효준이, 기본기 쌓은 6년이 남은 15년 동안 도움될 것"
박효준 아버지 "마이너리그 인고의 6년, 효준이는 단단해졌다"
미국프로야구에서 '한국인 빅리거' 꿈을 이룬 박효준(25·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아버지 박동훈씨는 "지나고 보면 5∼6년은 짧은 시간"이라고 아들을 달랬다.

이미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프로야구로 직행할 때, 박효준도 긴 마이너리그 생활을 각오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생각한 것보다도 아들은 단단했다.

박효준이 메이저리그에서 첫 홈런을 친 11일 박동훈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을 기다리며 산 것 같다"며 "작게 보면 개인의 영광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생하시는 야구팬들께 효준이가 잠시나마 즐거움을 드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효준은 이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NC파크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홈경기에 1번 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해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0-2로 뒤진 4회초 선두 타자로 등장한 박효준은 세인트루이스 좌완 선발 J.A. 햅의 시속 146㎞ 직구를 받아쳐 오른쪽 담을 넘겼다.

타구 속도는 시속 158㎞, 비거리는 116m였다.

박효준은 메이저리그 9경기 30번째 타석에서 손맛을 보며, 한국인 중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친 13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박효준 아버지 "마이너리그 인고의 6년, 효준이는 단단해졌다"
인고의 시간이 만든 값진 홈런이었다.

야탑고 3학년이던 2014년 7월 계약금 116만달러에 뉴욕 양키스와 계약한 박효준은 2015년부터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박동훈씨는 "효준이는 미국으로 건너갈 때, 꽤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뎌야 한다는 걸 각오하고 있었다"며 "물론 힘든 시간도 있었다.

2017년과 2018년 더블A로 올라가지 못하고 싱글A, 상위 싱글A를 오갈 때는 효준이도 실망한 눈치였다"고 떠올렸다.

박씨는 "지나고 보니 그 시간조차 효준이가 단단해지는 과정이었다"며 "효준이가 잘 버텼다.

그리고 성장했다"고 아들을 대견해했다.

위기는 또 있었다.

미국프로야구는 2020년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을 위협하자, 마이너리그 시즌을 취소했다.

하지만 박효준에게 2020년은 '야구를 향한 열정'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박동훈씨는 "마이너리그가 취소되면서 2020년에는 효준이가 빨리 한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집에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며 "운동할 장소가 생기면 바로 일어나서 훈련하러 갔다.

매일 하던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되니까, 야구를 향한 열망이 더 커졌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2021시즌이 시작하자마자, 박효준은 재능을 뽐냈고 더블A에서 트리플A로 올라섰다.

뉴욕 양키스 산하 트리플A 스크랜턴/윌크스-배리 레일라이더스에서도 박효준은 중심 타자로 부상했다.

뉴욕 현지 언론은 물론이고, 양키스 팬들까지 박효준의 빅리그 콜업을 기원했다.

박효준 아버지 "마이너리그 인고의 6년, 효준이는 단단해졌다"
박효준은 7월 17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한국인 역대 25번째였다.

그러나 양키스에서는 한 타석(1루 땅볼)만 선 채 마이너리그로 돌아갔다.

박효준을 '빅리거 재목'으로 평가하는 팀은 있었다.

복수의 구단이 양키스에 트레이드를 제안했고, 7월 27일 박효준은 '기회의 땅' 피츠버그로 이적했다.

2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 메이저리그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 첫 안타까지 쳐낸 박효준은 이후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었고, 11일에는 빅리그 첫 홈런을 신고했다.

박효준과 그의 가족은 '빅리그에서 뛸 기회를 거의 주지 않은' 양키스마저 '고마운 팀'이라고 한다.

박동훈씨는 "빨리 빅리그에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선수 생활을 오래 하려면 기본기를 확실히 쌓아야 하지 않겠나.

양키스가 효준이에게 그런 시간을 줬다.

양키스 구단에 감사하다"라며 "양키스의 철저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우리 효준이가 단단한 선수로 자랐다.

효준이가 마흔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양키스 마이너리그 시스템에서 배운 6년이, 남은 15년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효준 아버지 "마이너리그 인고의 6년, 효준이는 단단해졌다"
박효준은 11일 홈런을 친 뒤, 화상으로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했다.

통역은 없었다.

박효준은 유창한 영어로 취재진과 자유롭게 대화했다.

들뜬 마음을 꾹 누르던 박동훈씨도 이 장면을 떠올릴 때는 "아들 자랑을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운을 뗐다.

그는 "영어 능력도 효준이가 얼마나 살았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6년 동안 우리 효준이는 내적, 외적으로 단단해졌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짧은 아들 자랑을 한 박동훈씨는 다시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많다.

효준이 혼자 버티고, 성장한 건 아니다"라며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했다.

아들에게도 박씨는 '겸손'을 강조했다.

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박효준은 11일 경기 뒤 인터뷰에서 "나는 아직 완전한 메이저리거는 아니다.

천천히 녹아들고 있다.

팀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박동훈 씨는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메이저리그에 녹아드는 선수가 됐으면 한다"며 "무엇보다 팀에 도움이 되고, 주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버지의 이런 마음도 아들 박효준은 잘 알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