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식량 가격에 세계 4대 곡물 기업을 일컫는 ‘ABCD’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ABCD는 미국의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 번지(Bunge), 카길(Cargill)과 프랑스계 루이드레퓌스컴퍼니(LDC)를 말한다. 글로벌 곡물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이들 기업은 식량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서 순이익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곡물 공급량을 통제하며 시장 지배력을 높여나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9일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5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1년 전보다 39.7% 오른 127.8을 기록했다. 10년 만의 최고치다. 식량가격지수는 5대 품목군(곡물 유지류 유제품 육류 설탕)의 2014~2016년 평균 가격을 100으로 놓고 산출한다. 옥수수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72%가량 뛰었다. 유제품은 22%, 육류는 15.6% 상승했다.

식량 가격이 폭등한 것은 수요는 급증했는데 공급은 줄어든 탓이다. 각국이 코로나19 방역 규제를 완화하면서 식당들이 다시 문을 열자 육류, 유제품 등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고유가로 농작물을 이용한 바이오 연료 생산이 증가한 것도 곡물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반면 미주 대륙의 기록적 가뭄으로 식량 공급은 대폭 줄었다. 브라질의 지난겨울 밀 수확량은 예년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올해 들어 150%가량 상승한 해상 운송비, 선박 부족으로 인한 물류난 등도 식량 공급을 위축시키고 있다.

4대 곡물 기업 ABCD는 이 같은 상황에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작년 총 순이익은 45억달러(약 5조2000억원)에 달했다. 올해 실적은 더 좋을 것으로 전망된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시장을 장악한 이들 기업이 공급을 조절하며 수익을 올리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농산물 교역량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이들 기업엔 호재다. 그만큼 매출이 증가할 수 있어서다. 조세프 슈미트후버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부국장은 세계 농산물 교역량이 앞으로 6개월간 4~5%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곡물 메이저들의 실적은 ‘반짝 특수’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들 기업이 풍년이나 기근의 영향을 덜 받는 신사업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ADM은 최근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등에 들어가는 향료 색소 등 식품원료 시장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 시장은 경기를 덜 타고 수익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번지는 대체육 등 식물성 단백질 시장과 식용유 공장에 투자하기 위해 수십 개 공장을 매각했다. 카길은 미국의 거대 육류 가공업체이자 배양육 투자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LDC는 동남아시아 최대 사료업체 렁허프에 투자하며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