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치인 말에 담겨야 할 품격과 비전
정치인의 말은 중요하다. 말이 곧 정치이기 때문이다. 말은 곧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민은 후보자의 말을 통해 그의 역사관, 지적 능력, 기본 품성을 가늠한다. 그럴진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품격있고 신뢰를 부르는 말투는 후보 됨의 기본이다.

대선 후보 간 경쟁이 뜨거운 ‘정치의 계절’에 후보의 말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바지 한번 더 내릴까요?”라는 답변은 귀를 의심케 한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는지라 그분의 인격과 그분이 하고자 하는 정치의 품격까지 의심케 하는 말이었다. 이미 논란이 된 ‘미군은 점령군’ 발언으로 현대사에 대한 인식도 드러냈다. 본심은 미군은 ‘점령군’이니 ‘나가야 한다’는 의식이 밑자락에 깔려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실제로 이 지사는 2017년 성남시장 시절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적폐청산과 공정국가건설 토론회’에서 주한 미군이 없어져야 할 ‘적폐’라는 의미로 읽히는 발언을 했다. 자주국방의 시급성과 중요성에는 동의하지만, 당장 주한 미군이 없으면 북한 핵 위협은 무엇으로 방어할 것이냐는 현실 문제에 해결이 난망하다.

또 주한 미군이 ‘동아시아 방위용’이라고 할지라도 중국 인민군이 한국 국군을 쉽게 생각할 순 있지만 한·미 연합군이라면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는 전략적 ‘용미(用美)’를 간과했다. 이념만 강할 뿐 실용의 측면이 간과됐다. 이념조차 틀린 것이 1945년 9월의 미군은 당시 한반도에 있던 일본군에게는 ‘점령군’이었지만, 우리 민족에겐 ‘해방군’이었다. 주둔해 있던 일본군 34만 명의 시각에서 미군의 진주를 표현한 ‘해전사’의 잘못된 논리에 푹 빠져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선언도 그가 직접 쓴 글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권 카르텔’ ‘국민 약탈’ ‘윤리의식 마비’ ‘부패 완판’ 같은 용어가 선언문의 주를 이루는 것을 보면 아직 검찰총장식 마인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흔히 언급하는 ‘법대로’ ‘죄지은 자 때려잡고 벌주겠다’는 사명의식의 연장선에서 정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출마선언이 마치 검찰총장의 범죄소탕 회견문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 출마의 변(辯)은 뜬금없고 국민을 지나치게 어린애 취급하고 있다. 2030세대조차 ‘공짜 점심은 없다’ 정도는 체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과정의 공정함과 결과적 정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 전체에게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국민을 더 따뜻하게 보살펴야 합니다. 그 일을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도대체 ‘내 삶’을 왜 국가가 지켜줘야 하는지, ‘내 삶’의 행복, 취업, 결혼, 집, 육아, 노후 가운데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는 것인지 실체가 없는 허상이다. ‘지켜줌’이 지나치면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부모 간섭’ ‘국가 간섭’이 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정부가 국민을 ‘지켜줄’ 어린애 취급하지 않아야 굳센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 정부의 오지랖성 간섭으로는 국민이 성장할 수 없다. 이렇게 국민이 작아지고 정부가 커지면 사회주의다. 인민의 삶 모두를 하향평준화로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체제가 바로 어버이 수령의 북한이다.

국민이 대통령 후보들의 말에서 주의 깊게 검증해야 할 것들이 있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사관, 국민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할 것인지, 국가부채는 얼마로 줄일 것인지, 국민을 가르치려 들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창의를 중시하고 발현시키도록 도울 것인지 여부다.

모두 중요하지만 정치인의 대한민국 과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특히 주목해야 한다. 과거를 잘못 인식하면 현실을 부정하게 되고 미래를 잘못 그리게 된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와 ‘신한국 건설’, 김대중 정부의 ‘제2의 건국’, 노무현 정부의 ‘그놈의 헌법’,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그랬다. 내일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과거에 묶인 정치’가 아니라 국민과 기업의 창의를 발현시켜 G7 선진국에 들어가자는 ‘미래 지향의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