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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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수효과(落水效果), 영어로는 트리클 다운 이코노믹( trickle-down economics)라는 말이 있다. 기업이나 고소득층의 소득 증가가 소비나 투자로 이어져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는 현상을 '낙수효과'라고 한다.

컵을 피라미드같이 층층이 쌓아 놓고 맨 꼭대기의 컵에 물을 부으면, 제일 위의 컵부터 흘러 들어간 물이 다 찬 뒤에야 넘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간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국부의 증대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분배보다는 성장을,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을 우선시한다는 전제로부터 나온 것이다.

낙수효과 유무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없다는 말은 경제성장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기업활동으로 나타나는 낙수효과보다 금융이나 부동산 투기 등 불로소득 등에 의한 양극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낙수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불로소득과 기업활동의 소득은 다르다.

모든 부의 축적이 낙수효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부의 축적에는 기업의 가치 창출 활동과 불로소득이 있다.

불로소득은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활동 이외의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부동산 투기나 주식, 유가증권, 가상화폐의 단타 매매에 의한 양도차익,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고리대금 등이 해당한다.

공장 등 산업활동에 필요한 부동산 투자나 기업의 채권이나 주식 장기보유 등 기업의 가치 창출을 돕는 투자는 불로소득이 아니다. 농업용지 개간이나 위락단지 조성 같은 부동산 개발도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불로소득이 아니다.

기업활동에 의한 부는 고용과 산업 연관 효과로 대중에게 낙수 되지만 불로소득에 의한 부는 오히려 대중에게 해악을 끼치고 빈부의 극심한 격차를 초래할 뿐이다.

지대추구(地代追求, rent-seeking)는 기존의 부에서 자신의 몫을 늘리는 방법을 찾으면서도 새로운 부를 창출하지는 않는 활동을 말한다. 사회적 기여 없는 지대추구의 전형이 부동산이나 금융투기이고 그러한 불로소득의 재원은 세계화를 통한 유동성 과잉공급에서 촉발된다. 이러한 행태의 불로소득에는 낙수효과가 전혀 없다.

기업활동은 노사분규, 불가피한 갑질 행위, 산재사고 등 무수한 위험에 맞닥트리게 된다. 그러나 부동산이나 금융투기는 기업활동 처럼 복잡하지 않으며 단지 가격 등락에 관한 판단과 절세 방법만 고민하면 된다.

기업활동은 그 자체가 바로 동반성장이다. 기업을 운영하려면 근로자를 고용해야 하고, 원자재를 사야 하며 생산품을 파는 행위를 해야 한다. 제품 생산과 판매는 곧 고용이고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이다. 그러면서 전방산업·후방산업을 발전시킨다. 기업활동 모든 것이 낙수효과이다.

기업활동이 아닌 불로소득이 빈부의 격차와 양극화를 키우는 것이다. 불로소득이야말로 낙수효과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고용도 없고, 동반성장도 없다. 기업가와 근로자의 땀과 꿈을 몰래 빨아먹는 기생충과 같은 행위에 가깝다.

건전한 사회 구성원의 근로의욕과 창의력을 감퇴시키고 소득분배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와 금융투기 소득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하고 기업활동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규제만 남겨두어야 한다.

기본소득 논쟁이 격렬하다.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며 1970년대 유럽에서 논의가 시작되어 2000년대에 들어 논의가 급속히 확산하였다.

공공 배당금이라고도 한다. 하위계층에만 선별하여 주자는 주장도 있다.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보조금을 주는 소득세 또는 그 제도로서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이다.

문제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부자가 자진하여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고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준다는 것이다.

한정된 국가의 자산을 분배 권한을 가진 권력이 뒤처진 저소득층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하여 돈이 들어가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뻔한 틀에 갇혀서 국민의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하는 일은 AI(인공지능)까지 갈 필요 없이 엑셀로 기본 틀을 만들어 다룰 수 있는 아이(ai)도 일주일이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국가가 할 일은 부국(富國)과 강병(强兵)이다. 부국 하려면 국가의 세수가 많아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 세금을 많이 거두려면 잘되는 기업이 많아야 하고 그 기업이 지속해서 성장, 확대되어야 한다.

그 일을 하는 것이 부국이지 돈 들어올 궁리는 안 하고 나누어 줄 생각에만 집중하는 것은 순서가 바뀐 일이다. 부국은 중산층이 두툼해진다. 당연히 상류층과 중산층이 십시일반(十匙一飯)하면 저소득층의 기본 생활은 저절로 보장된다.

부국 한 후 강병이 온다. 나라에 힘이 강해야 누구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침략할 생각조차 못 한다. 우리 기업과 국민이 세상을 누비며 부국 행위를 당당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바탕도 강병이다. 미국 항공모함이 오대양 바다 위, 아래를 유유히 다니는 모습이 강병이다.

한강의 기적은 저절로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흔히 라인강의 기적과 비교하지만, 차원이 다르다. 독일은 전쟁 전으로 회복하는 정도의 기적을 만들었지만, 한강의 기적은 무에서 유를 창출한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을 만들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화, 수출대국으로 만든 일이다.

70년대 초 한국이 수출한다고 하였을 때 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조차 돌았다고 할 정도였다. 당시 농업인구가 반이 넘고 GDP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국내 산업 비중의 반 이상 역시 농업이었다.

농업사회는 감속 경제이다. 땅은 한정되어있고 인구는 늘어나니 소득은 줄어드는 제로섬 경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빈국이 농업 위주의 국가이다.

수출하려면 산업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 당시 한국에서 공산품, 물건이라고 내세울 만 것은 강화도 화문석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에 물건을 팔려면 품질도 좋아야 하고 가격이 싸야 한다.

그나마 공장도 천연자원도 전기도 대부분 북한에 있었다. 물건을 만들 기술도 철강 등 원자재는 커녕 수출입할 항구나 도로도 없었다. 아니 도로를 달리는 차도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수출입국(輸出立國), 산업화라는 발상 자체가 몽상이고 돈키호테가 비웃을 만한 치기 어린 의지였다.

젊고 아리따운 여성들이 서독에서 피 묻은 시체를 만지고 말쑥한 청년들이 서독의 50m 갱도 아래서 목숨을 걸고 광부 일을 했다. 가관(?)인 것은 당시 대통령은 서독에 가서 그들을 얼싸안고 울더니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4천만 달러의 돈을 빌려온다.

젊은 학생들이 자원하여 참전한 월남에서 32만 명 청년들의 목숨으로 번 돈을 국가가 대신 나서서 50억 달러의 외화 수입을 중간 마진으로 챙겼다. 그 뿐만 아니라 야당과 대학생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일제 만행 대가인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보상을 급전으로 받아온다. 중동 사막에서 땀과 눈물 값으로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 돈으로 고속도로 만들고 제철소를 만들며 온 나라가 모두 미친 듯이 밤새며 일하여 수출을 시작하였다.

한국의 경제는 감속 경제에서 급가속 경제로 변하였다. 기간 사업 확충을 목표로 한 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3, 4차를 거치면서 중화학 공업 산업화와 수출대국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다. 경제 10위권의 나라가 되었다. 한국만이 한 부국의 일이다.

부자 반열에 들어서니 노동자 문제, 민주화라는 데 눈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니 삶의 질에 대한 자유, 민주, 공정이라는 고차원적인 문제를 논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다시 기본소득이 화두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사차 산업혁명시대는 이미 출발하였다.

3차 산업혁명의 성과는 보통 시작 후 10년 이상 또는 중후반기에 격차가 나타나며 벌어진다. 3차 산업혁명시대에 빈국과 부국으로 갈린 나라가 현재까지 거의 그대로이다. 사차 산업혁명시대는 아예 선승 독점시대이다.

지배하는 나라 몇 개국과 지배국의 협력국인 소수의 나라 외에는 철저하게 지배당하는 나라가 된다. 혁명은 수입해서 사거나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기업, 정부가 일으켜 만들어야 한다.

나라가 부국하지 못하면 먹고사는 기본 생존권 등, 기본 이하의 문제로 나라는 악순환에 빠진다. 삶의 질이 한강의 기적 전의 나라 모습으로 퇴보 하여야 되겠는가?

국가 재정이 넉넉하여 누구에게나 기본소득을 준다는 것을 누가 마다할까? 하지만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업활동을 늘려 기업소득이 모두에게 낙수효과, 동반 성장하는 나라 만드는 일에 이제 논쟁이 치열하면 좋겠다. 그런 정치 지도자의 탄생을 국민들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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