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처벌 대신 피해자 회유·압박
국방부 장관 만난 모친, 오열하다 실신
국방부 검찰단이 2일 뒤늦게 장모 중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공군의 엉터리 수사와 부실 대응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진상 규명에 핵심 증거가 될 장모 중사의 휴대전화는 사건 발생 3개월 후인 지난달 31일에야 압수가 이뤄진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에 따르면 피해자인 이 중사는 지난 3월 5일 소속 부대인 공군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에서 받은 최초 피해자 조사에서 선임 부사관인 장 중사가 차량 안에서 자신의 신체를 만지고, 본인의 특정 신체 부위를 강제로 만지게 하는 등 강제추행했다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장 중사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당시 공군 군사경찰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이어갔다.
당시 차량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유일한 목격자인 운전을 하던 후배 부사관(하사)이 있었다. 운전을 한 하사는 군사경찰 조사에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군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장 중사가 다른 부대로 파견 조치된 건 사건 발생 후 2주일이 지난 3월 17일이었다.
겉으론 매뉴얼대로 사건 처리가 진행됐지만 뒤에선 집요한 회유와 합의 종용이 이어졌다.
게다가 유족은 공군본부 검찰부에서 선임해준 국선변호인은 피해자 보호는 물론 사건 자체에 관심이 없어보였다고 주장했다. 공군 스스로 밝힌 국선변호인과 피해자의 통화는 단 두 차례였다.
공군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유족들은 새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새로 선임된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에게 고소장과 고소인 진술조서 등 기본적인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체 자료가 없다면서 주지 않았다.
이 중사는 피해 이후 20비행단 소속 민간인 성고충 전문상담관으로부터 22회의 상담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상담 중이던 지난 4월 15일 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같은 달 4월 30일 성폭력상담소는 "자살징후 없었으며, 상태가 호전됐다"는 진단과 함께 상담을 마쳤다.
이 중사는 5월 3일 청원휴가가 끝났지만 2주간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자가격리를 했다. 격리가 끝난 뒤 20비행단에서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 조치가 이뤄졌고, 나흘 만인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일 사건 이후 처음으로 유가족을 만나 "한 점 의혹이 없게 수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욱 장관을 만난 이 중사 모친은 오열하다 쓰러졌다. 한편 이모 중사는 억지로 저녁 자리에 불려 나간 뒤 귀가하는 차량 뒷자리에서 강제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에 따르면 사건 이후 즉각적인 피해자 보호 매뉴얼 가동 대신 부대 상관들의 조직적 회유가 이뤄졌다. 심지어 같은 군인이던 이 중사의 남자친구에게까지 연락해 회유했다.
이 중사는 지난 18일 청원휴가를 마친 뒤 전속한 부대로 출근했지만, 나흘 만인 22일 오전 부대 관사에서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중사는 발견 하루 전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마쳤으나 당일 저녁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도 휴대전화로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