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으로 국제 유가가 코로나19 직전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주유소업계의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우선 주유소 판매가격이 유가 상승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로부터 싼 가격에 기름을 공급받는 알뜰주유소가 늘면서 일반 주유소는 가격 경쟁에서 점차 밀리고 있다. 주유소 업주들은 차라리 모든 주유소를 사실상 정부 지원을 받는 알뜰주유소로 전환해 달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알뜰'에 치이고 경쟁 심화…주유업계 비명

알뜰주유소 휘발유 L당 31원 싸

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전국 주유소의 평균 판매가격(보통휘발유 기준)은 L당 1544.9원이다. 지난해 5월 1100원대까지 떨어졌던 기름값은 코로나19 직전 수준으로 올라왔다.

전국 주유소는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4대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과 일종의 프랜차이즈인 자영점, 알뜰주유소 등으로 나뉜다. 통상 직영점과 자영점은 4대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는다.

알뜰주유소는 다르다.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정유사와 2년 단위 계약을 맺고 최저가 입찰을 통해 대규모로 석유제품을 공급받아 알뜰주유소에 나눠준다. 운영과 관리는 농협, 한국도로공사 등이 맡고 있다. 알뜰주유소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았던 2011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 이후 도입됐다. 일반주유소보다 싸게 기름을 공급해 전체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알뜰주유소는 10년 만에 1236곳(지난달 말 기준)까지 늘었다. 전국 주유소 1만1311개 중 10.9%를 차지한다. 이들 주유소의 지난달 31일 기준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523.8원으로 일반주유소(1555.4원)보다 31원가량 저렴하다.

일반 주유소업계는 10년간 지속돼온 정부의 시장 개입을 끝내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지난달 28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주유소시장에 부당하게 개입해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유소 2000개 이상 줄어야” 지적도

일반 주유소업계는 석유공사가 최저가 입찰을 통해 정유사로부터 시장가격보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공급받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정유사가 여기서 발생하는 손실을 만회하려고 일반 주유소에는 비싸게 석유제품을 팔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4대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평균 가격은 L당 1506.2원. 주유소의 판매마진(판매가격-공급가격)은 L당 49.2원이다. 코로나19 직전인 지난해 2월 평균 판매마진(124.2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업계는 L당 약 100원을 임대료, 카드 수수료, 인건비 등을 부담할 수 있는 적정마진으로 본다.

주유소업계는 일반주유소가 정유사에서, 알뜰주유소가 석유공사에서 각각 공급받는 가격이 L당 100원 이상 차이가 난다고 주장한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석유공사가 한꺼번이 대규모 물량을 구매하는 만큼 공급가격은 쌀 수밖에 없다”면서도 “L당 100원 차이는 과장된 수치”라고 지적했다.

주유소업계 경영 악화의 근본 원인은 주유소 숫자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전국 주유소는 최근 10년간 연평균 1.3% 줄고 있다. 그런데도 1만1311개 주유소가 영업 중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주유소들이 현 수준의 영업실적을 유지하려면 2030년까지 2000개 이상은 축소돼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