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吳보천리'…오세훈 시장 한 달 '속도조절'
오세훈 서울시장(사진)이 4·7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10년 만에 시장 자리에 돌아온 지 한 달이 됐다. 오 시장은 당선 초기 ‘독자 방역’과 재건축 규제 완화, 재산세 감경 추진 등으로 정부를 쉴 새 없이 압박하다가 최근 들어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내년에 곧바로 대권에 도전하기보다 시장 재선을 노리고 5년 집권 체제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6일 복수의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오 시장은 최근 간부들에게 각종 현안 및 주요 공약 실현 방안과 관련해 “충분한 준비와 논의를 거친 뒤 서두르지 말고 사업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 시장이 취임 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했던 ‘서울형 상생방역 매뉴얼’은 지난달 공개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종안이 나올 때까지 조금 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의 합의를 전제로 추진하겠다”는 오 시장의 방침 때문이다.

오 시장의 핵심 복지정책인 안심소득 실험 착수 시기도 올 하반기가 아니라 내년으로 늦춰질 공산이 크다는 게 시 안팎의 시각이다. 실험집단 구성과 보건복지부와의 협의 등 절차를 충분히 점검한 후 시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오 시장은 내년 대권 경쟁에 나가지 않을 것이란 언급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안다”며 “이번 임기 1년2개월이 아닌, 서울시장 재선 도전을 전제로 5년 시계(視界) 시정을 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시의 10년 청사진을 그릴 ‘서울비전 2030 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이날 서북·서남·동북 등 3개 권역에 여러 대학을 연계한 창업밸리를 조성해 ‘청년서울’을 만들겠다는 구상도 ‘우보천리(牛步千里)하겠다’는 오 시장 생각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다.

오 시장이 한 달간 추진했던 정책 중 가장 눈에 띄게 속도를 줄인 분야로는 부동산이 꼽힌다. 그는 후보 시절 “1주일 내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밝힌 뒤 당선 후 가장 먼저 주택건축본부 업무보고부터 받는 등 빠른 주택 공급 정책에 힘을 실었다.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안전진단 기준 완화, 공시가격 제도 개선 등을 국토교통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이 이를 호재로 받아들여 재건축 단지 위주로 신고가가 속출하자 여의도·목동·압구정·성수 등을 토지거래허가 구역으로 묶고 시장 안정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오 시장이 비록 방역과 부동산 두 가지 핵심 정책에 대해 빠르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많다. 여당 관계자는 “국무회의의 유일한 야당 참석자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서울시의회와도 아슬아슬하지만 협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당과 정부에 자극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오 시장이 자신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무상급식 이슈에 대해 유치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발표한 게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 시절이었던 작년 11월 시작된 광화문 재구조화 공사도 전면 재검토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일부 보완해 이어가기로 결정하는 등 정책 일관성을 최대한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새 시장이 온 뒤 기존 정책을 모두 뒤엎거나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사태풍이 있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간 분위기”라고 말했다.

하수정/안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