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붓꽃-아이리스'
정신병원에 제 발로 들어간 고흐
'행운' 꽃말 지닌 붓꽃 그리기 열중
자기암시 통해 마음의 병 치유
1년간 작품 130점…초인적 집중
고흐 전문가 마틴 베일리에 따르면 이곳은 사립 요양원으로, 다른 공립 요양원과 달리 환자 수가 적었고, 비교적 자율적인 생활환경을 제공했다. 고흐는 건물 밖으로 외출할 수 있었던 유일한 환자였다고 한다. 또 창작의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생폴 드 모졸에 입원한 첫 주부터 고흐는 5월의 정원에 핀 붓꽃에 매료돼 곧바로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고 이듬해 퇴원할 때까지 붓꽃을 소재로 한 네 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그가 붓꽃에 흥미를 느끼고 지속적으로 탐구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고흐는 ‘기쁜 소식’ ‘행운’의 꽃말을 가진 붓꽃이 사악한 영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붓꽃을 그리면 광기와 발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기암시가 붓꽃에 집착하게 된 강력한 동기가 됐다. 그런 그의 심정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다. ‘이곳으로 오길 잘한 것 같다. 요즘 보라색 붓꽃 그림과 라일락 덤불 그림 두 점을 그리고 있는데 두 점 모두 정원에서 얻은 소재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다시 회복될 것이다.’
다음은 붓꽃을 활용한 색채 연구다. 정원에 핀 붓꽃을 실내로 옮긴 이 작품에 등장한 각기 다른 노란색의 탁자, 화병, 배경은 실물이 아니라 상상의 산물이다. 보라색 붓꽃과 보색 관계인 노란색을 사용하면 대담한 색상 대비로 장식미를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강렬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흐는 ‘나 자신을 보다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색의 시각적·심리적 감정 효과를 열정적으로 탐구한 화가였다.
이런 고흐가 가장 사랑한 색이 노란색이었다. 그는 노란색을 더욱 강렬하고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전략으로 보라색 붓꽃을 선택한 것이다. 고흐는 생폴 드 모졸에서 지낸 1년 동안 자기암시를 통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발작 증세와 자유를 구속당하는 삶으로 인해 잠시 절망에 빠지고, 그림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날들도 있었지만 그는 매번 자기암시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붓을 쥐었다. 그 결과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불과 1년 동안 130점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는 2~3일에 한 점을 그려야 가능한 것이어서 굉장한 집중력을 갖고 경이로운 속도로 그림을 그렸음을 의미한다. 자기암시로 태어난 ‘붓꽃’ 연작은 고흐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