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파72)에서 열린 마스터스토너먼트 4라운드. 4타 차로 단독 선두를 달리던 마쓰야마 히데키(29·일본)가 15번홀(파5)에서 친 두 번째 샷이 야속하게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챔피언 조에서 4홀 연속 버디를 잡으며 맹추격해온 잰더 쇼플리(28·미국)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버디를 잡아내 순식간에 2타 차로 타수를 줄였다. 이제 남은 홀은 고작 3홀.

긴장감이 지나쳤을까. 쇼플리는 16번 홀에서 어이없는 트리플보기를 기록했다. 아이언 티샷이 물에 빠져 1벌타를 받은 데다 드롭존에서 친 세 번째 샷은 그린을 넘어가 버렸다. 버디 찬스로 활용해야 할 파3홀에서 ‘양파’를 기록했다. 마쓰야마 역시 보기를 기록하며 1타를 늘렸지만 쇼플리의 자멸 덕에 타수는 4타 차로 벌어졌다.

남은 두 홀을 마쓰야마는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윌 잴러토리스(미국)가 먼저 9언더파로 경기를 마무리한 상황. 마쓰야마는 18번홀에서 아깝게 보기를 추가했지만 1타 차를 지켜내며 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명인열전’ 마스터스 챔피언에 올라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된 순간이다.

정교한 쇼트게임과 정신력 빛나

마쓰야마는 이날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5개를 묶어 1오버파 73타를 쳤다.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2위 잴러토리스를 1타 차로 제치고 그린재킷을 입었다. 아시아 선수가 마스터스 챔피언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남자 선수의 메이저대회 우승은 2009년 PGA 챔피언십의 양용은(49)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마쓰야마는 이번 대회 내내 쇼트게임에서 정교한 샷을 구사하며 우승 후보로 꼽혔다. 첫 라운드에서 3언더파로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렸다. ‘무빙데이’인 3라운드에선 하루 만에 7언더파를 몰아치며 단독 선두로 치고나갔다.

4라운드에서는 1번홀(파4) 보기로 경쟁자들에게 추격의 틈을 주는 듯하다가 2번 홀(파5) 버디로 곧바로 만회했다. 이어 8번홀(파5), 9번홀(파4) 연속 버디로 선두 굳히기에 들어갔다. 잴러토리스, 쇼플리 등 경쟁자들의 거센 추격에도 침착하게 경기를 이어갔고, 마지막 홀까지 단독선두를 지켜냈다.

일본 남성 최초 메이저 우승

마쓰야마가 처음 마스터스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이다.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자(2010년) 자격으로 처음 출전해 아마추어로는 유일하게 컷을 통과했고, 공동 27위의 준수한 성적으로 실버컵을 받았다.

2011년 마스터스 시즌은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가 극심했던 때다. 특히 마쓰야마가 피해 지역인 센다이의 도호쿠후쿠시대학 출신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오키 이사오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회장은 “마쓰야마가 동일본 대지진 때 아마추어 최고 성적으로 상심한 일본 국민에게 용기를 줬고, 올해는 코로나19로 우울함에 빠진 일본 국민에게 마스터스 우승으로 희망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거둔 이번 우승은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특히 ‘백인 남성만을 위한 편협한 공간’이라는 악명이 높았던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의 승리라는 점이 통쾌함을 더하는 요소다. 이번 우승으로 마쓰야마의 세계 랭킹도 껑충 뛰어올랐다. 그는 이날 발표된 남자 골프 세계랭킹에서 지난주 25위에서 11계단 상승해 14위를 차지했다.

김시우(26)는 합계 2언더파 286타를 쳐 공동 12위를 기록했다. 2019년의 공동 21위를 뛰어넘는 개인 최고 성적이다. 공동 12위까지 주어지는 내년 대회 출전권도 받았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